서방의 민간인을 납치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은 인질의 모습과 목소리가 담긴 비디오를 언론에 공개, 상대국을 압박함으로써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잔인한' 심리전을 펼쳐 왔다.
아프간 반군 탈레반에 붙잡힌 한국인 인질 가운데 임현주 씨가 26일 미 CBS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두 건강이 좋지 않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거의 모든 인질은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에서 때로는 저항세력을 대변하는 듯한 절규를 토해냈다.
비디오에 등장한 인질들은 어떤 경우는 석방됐지만 어떤 경우는 무참히 살해됐다. 따라서 비디오 공개를 기준으로 인질의 운명을 가늠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프간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독일 여성 한넬로어 크라우제(62)와 아들 시난(20)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는 피랍 한 달을 넘긴 지난 3월10일 아랍 TV방송에 방영됐다.
크라우제는 당시 "나는 위협받고 있다. 이 사람들은 독일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내 앞에서 아들을 죽인 뒤 나를 죽이길 원한다"고 눈물로 아프간 주둔 독일군의 철군을 호소했다.
독일 정부는 철군 요구를 무시했지만 크라우제는 피랍 5개월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아들은 지금도 억류된 상태다.
2004년 10월 아프간 카불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된 유엔선거감시원 3명도 피랍 9일만에 파키스탄 민영TV에 방영된 비디오에서 복면한 남자와 함께 나타나 "우리는 미국과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편이 아니다"라며 자신들의 석방을 애원했다. 이들은 11월23일 전원 풀려났다.
2006년초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의 프리랜서 기자 질 캐럴(29)의 비디오는 3차례나 아랍권 TV의 전파를 탔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캐럴은 '수감된 이라크 여성포로들을 석방하라'는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나는 괜찮다. 제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달라. 가능한 빨리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호소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며 재촉했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다 2005년 말 납치된 평화운동단체 '크리스천 피스메이커팀' 소속의 미국인 톰 폭스, 영국인 노먼 켐버 등 4명도 비디오에 등장해 '영국군 철군' 등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구명을 요구했다. 이중 폭스는 총상으로 숨진채 발견됐으나 나머지 3명은 연합군의 합동군사작전으로 억류 4개월만에 구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는 달리 비디오 속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못한 인질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2004년 5월 이라크 저항세력의 중심지인 팔루자에서 납치된 한국인 김선일(당시 33) 씨는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를 통해 방영된 비디오에서 영어로 "제발 여기에서 나가게 해달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내 아내는 중요하다"며 울부짖었으나 정부의 석방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6월22일 참수됐다.
김 씨와 같은해 10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이라크 무장조직에 납치된 일본인 고다 쇼세이(香田證生·당시 24)는 이슬람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비디오에서 복면을 한 납치범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은 일본 정부와 총리가 일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참수할 것이다"라며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으나 결국 참수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역시 같은 해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영국인 케네스 비글리(당시 62)는 9월22일 이슬람 웹사이트의 동영상에서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를 향해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제발 이라크 여성 수감자들을 석방해 달라. 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내를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테러집단과의 협상불가' 원칙을 고수했고 보름여 뒤 비글리의 죽음은 아랍에미리트의 TV방송국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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