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정치인이 구락부나 연합회 정도의 모임을 만들고 얼마 후 해산하고 또 새 모임을 만드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정당이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 정당 같지 않은 조직을 정당이라고 부를 때 국민은 헷갈린다.
엊그제에도 새 ‘정당’이 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긴 이름의 조직이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등장한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에 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 모임은 발족하면서부터 열린우리당에 ‘당 대 당 통합’을 제안했다니 조만간 다른 이름으로 바뀔 것을 아예 전제하고 있다. 상황 전개에 따라 얼마나 많은 새 이름의 정당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름을 외울 수조차 없을 만큼 나왔다 들어가는 조직을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회의(懷疑)는 정당이 추구해야 할 여러 기능을 고려할 때 더 커진다. 우선 사회이익의 대변과 집성이란 정당 고유의 기능을 보자. 이번 신당이 어떤 사회이익을 어떤 식으로 대변하고 집성할지를 상투적 수사를 넘어 명확하게 제시하는지 의문이다.
대선 승리가 조직 구성의 가장 큰 명분이고 총선에서 한 자리 얻는 것이 조직 가담의 숨은 동기임은 알겠는데 어떤 국민의 어떤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지 감이 안 잡힌다. 상투적 수사마저 기존 정당과 차별성이 없다면 정당으로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국민에게 국정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 의식을 이끄는 기능, 즉 정치사회화의 관점에서도 신당은 정당으로서 인정받기 힘들다. 신당이 국민 의식에 영향을 주는 점이 있다면 선거 승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릇된 생각을 퍼뜨리고 정치인은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감을 심화시키는 정도일 것이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함으로써 거버넌스를 제고한다는 정당 기능도 선거 목적으로 급조된 조직에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선거용 조직이므로 유권자 투표 결정의 길잡이 역할이라는 정당 기능은 수행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마저 답은 부정적이다. 국민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형성되지 않고 정치인과 관변 단체 출신 인사끼리 뚝딱 만들었고, 언제 다른 조직과 합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거나 길잡이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해 선거 관심을 줄이거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할 공산이 크다.
정당은 민주주의 체제에 꼭 필요한 존재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회이익을 대변하고 집성하며 국민 의식을 이끌고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 효과적 국정 운영을 주도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정당답지 않은 조직이 정당인 척한다면 순기능은 기대할 수 없고 정치는 비극이 된다. 이상적 정당을 실제 찾기는 쉽지 않지만 요즘 탈당, 분당, 창당, 재탈당, 재분당, 재창당의 되풀이 속에서 나오는 조직은 정당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정당이라는 개념을 욕되게 하지 않고 실제 존재할 수 있는 정당다운 정당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정당이란 표현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당 대신 무슨 모임이나 연합 등의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선거 승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만큼 선거연합이란 말을 써도 괜찮을 터이고.
연합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랄 만큼 임시적이고 이질적 요소로 구성된 조직을 정당이라고 한다면 정당 자체에 대한 국민의 냉소주의와 불신감이 너무 깊어져 결국 정치권 전체가 공멸하고 국정이 망가질 위험이 있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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