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발표한 정상회담 합의문은 "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나가는 것"이라고 이번 회담의 의의를 정리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배경엔 이러한 필요성과 더불어 '2.13 합의'와 그 이행을 통해 최근 호전되고 있는 북미관계가 가장 큰 고려 요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포괄적 방안'을 축으로 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한반도 국제환경이 변화하고 있던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고 대북송금 특검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로 남북관계가 소원해진 가운데 2005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만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할 때도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하는 등 변화하는 미국의 대북태도가 주효했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 등에 고무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과 테러지원국 해제와 대적성국 교역금지 적용 배제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연내 불능화에 동의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보다 공고히 함으로 앞으로 변화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남한의 후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항상 남북관계의 핵심변수는 북미관계에 있었다"며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심한 데는 최근 호전되는 북미관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 차례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온 북한이 이번에 적극적인 호응으로 태도를 바꾼 데는 북미관계 변화로 시작된 한반도 정세변화 속에서 경제적으로 남측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기 위해 남측의 긴급하고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했다면, 이번에는 식량·비료 등의 지원보다는 남북간 경제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발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2005년 국제기구의 대북지원을 구호지원에서 개발지원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으며, 7일 판문점에서 열린 6자회담 에너지·경제지원 실무그룹회의에서도 '소비성 지원'과 '투자성 지원'으로 구분하는 등 외부의 투자를 이끌어내 장기 개발프로젝트를 세우는 데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나타냈다.
따라서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은 남측의 경제협력을 통한 개발지원을 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중국의 대북 경협이 본격화되면서 대규모 경제협력이 중국 일변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남한과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적 다각화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다 남쪽이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여 앞두고 있는 점도 북한이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든 이유의 하나로 분석된다.
북한은 올해초 노동신문 등 3개 신문 공동사설에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보수 세력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각종 언론매체들은 반한나라당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결심한 것은 상대적으로 진보성을 갖고 민족문제에 관심이 큰 현 집권 지도부를 지원함으로써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꾸준히 대두하고, 독일 의사들로부터 심근경색 시술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65세인 김정일 위원장의 신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와 북한을 둘러싼 환경을 호전시키는 게 시급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그 수단중 하나로 선택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수립하기 위해서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끌고 갈 필요가 있다"며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진입시킨 뒤 차기 후계자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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