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개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초반부터 박빙의 접전을 벌이면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전날 밤부터 체조경기장에 모아져 삼엄한 경비 속에 보관됐던 투표함이 낮 12시 30분경 개봉되자 양 캠프 참관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누가 더 많은 표를 얻었는지 살펴보며 캠프 인사들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개표 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가 7%포인트 이상 격차로 여유 있게 승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오후 1시경 개표가 10%가량 진행됐을 무렵 박 전 대표가 2000표 정도 앞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양 캠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일각에서 4000표까지 앞서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 전 대표 측은 ‘대역전 드라마’를 기대하기도 했다.
특히 이 전 시장이 압도적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지역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우세지역으로 분류했던 부산, 경기지역에서도 박 전 대표에게 뒤지는 것으로 전해지자 이 전 시장 캠프 인사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지지세가 강한 대구 경북 지역 개표가 초반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전 시장 측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개표 막판 이 전 시장의 우세를 보였던 서울 지역 투표함만 4개 남은 것으로 확인되고 이 전 시장의 캠프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투표함이 마지막으로 개봉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전 시장 측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최종 개표 결과 선거인단 개표에서 박 전 대표가 432표를 앞서고 여론조사 결과까지 합산한 결과에서 이 전 시장이 2452표 차로 승리하자 이 전 시장 측은 크게 환호했고 박 전 대표 측은 고개를 숙였다. 이 전 시장 측 관계자는 “용궁에 갔다 왔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관중석에 전해지자 박 전 대표 지지자 약 30여 명은 30여 분간 “경선 무효”를 외쳐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사회자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구호를 멈추지 않던 이들은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을 선언하자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들을 비롯한 박 전 대표의 지지자 200여 명은 전당대회가 끝난 뒤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약 20분 동안 “경선 무효”를 외치며 경선 결과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몇몇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이 좋아서 지지하는 줄 아느냐. 박근혜가 좋아서 지지하는 것이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개표에 앞서 진행된 식전행사에서 후보들은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상대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에게 “강하면서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대단한 장점이며 한나라당의 큰 인물이다”고 치켜세웠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에 대해 “추진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도전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힘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소회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경선기간 내내 내가 후보인지 페이스메이커(pacemaker)였는지 모르겠다. 이쪽저쪽 막아 주다 보니 선호도는 높은데 지지도는 없다”고 하소연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은 “네 후보는 박수 받는 재미로 한 달 보냈지만 나는 양쪽에서 욕먹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어찌나 치열하고 뜨겁던지 얼굴에 화상을 입어 이렇게 시커메졌다. 화상의 대가를 정권교체로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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