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비리 때마다 “사실 아니다” 보호막

  • 입력 2007년 9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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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들이 춤을 추고 있다”며 “(언론 등이) 과오는 부풀리고…”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노 대통령과 참모들의 ‘도덕적 이중잣대’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비리에 휩싸이거나 구설에 오를 때마다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라며 보호막을 쳤다. 》

■ 盧대통령-청와대의 제 식구 감싸기

이광재 특검받자 “특별한 잘못 없는데…”

1억수수-위증 드러나자 “국민께 송구”

안희정 영장엔 “뭘 세번씩 청구하느냐”

양길승 향응 파문엔 “사생활 보호돼야”

▽“정윤재는 지금 청와대 떠난 사람”=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부산국세청장과 부산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던 건설업자를 소개해 주고 뇌물이 오고간 식사 자리에 동석한 것은 ‘현직 의전비서관’ 시절이었다.

하지만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미 떠난 사람의 잘못을 청와대가 들출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표가 수리된 만큼 청와대 자체 조사는 필요 없다는 것. 천 대변인은 검찰의 보강수사 방침이 밝혀진 지난달 31일 “근거 없는 의혹만을 가지고 무슨 권력형 비리가 있는 양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민정수석실은 이 사건 관련 정보를 보고받은 뒤 정 전 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해도 괜찮은지를 검찰에 확인했다. 검찰로선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천 대변인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측근 사건마다 ‘보호막’=청와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노 대통령이 과거 측근 연루 사건 때마다 공개적으로 측근 보호를 위해 애정 어린 언행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측근인 최도술 대통령총무비서관이 SK그룹으로부터 11억 원이란 거액의 (대통령) 당선 축하금을 받은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자 느닷없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노 대통령은 최 비서관의 비리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되자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거두기 어렵고 돈의 용도에 대해 선의를 믿고 있다”고 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재신임 문제를 물을 때마다 말을 바꿨고, 노 대통령의 임기 관련 발언이 잇따르면서 정치권도 시큰둥해했다.

노 대통령은 이광재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2003년 10월 ‘썬앤문’ 사건으로 사표를 내자 이를 수리하면서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 물러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특검은 이 의원이 썬앤문 문병욱 회장에게서 1억 원, 또 다른 측근인 여택수 씨가 문 회장에게서 5000만 원을 각각 받는 자리에 노 대통령이 함께 있었다는 ‘추가 사실’을 밝혀냈다. 청와대는 그제서야 대변인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 새로운 정치를 탄생시키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386’ 측근인 안희정 씨가 2003년 5월 나라종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동업자”라는 표현을 쓰며 안 씨를 두둔했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송광수 씨는 한 대학 강연에서 검찰이 안 씨에 대해 세 차례나 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뭘 세 번씩이나 청구하느냐”고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털어놨다.

이와는 별도로 노 대통령은 안 씨가 대선 후 기업으로부터 받은 2억 원을 유용해 아파트를 산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자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옹호했다. 대통령이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며 공개 반박을 한 것.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씨의 용인 땅 매매계약 의혹이 2004년 6월 터지자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란 공개편지를 띄워 “선생님이 당하고 있는 고초를 생각하면 밤잠을 못 이룬다”고 옹호했다.

▽청와대도 ‘제식구’ 일에는 ‘감싸기’ 급급=노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도 ‘제식구’ 관련 사건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다.

대통령의 곁을 지키며 보좌해야 할 양길승 제1부속실장이 2003년 7월 말 충북 청주시까지 내려가 살인교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범법자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그가 소유한 호텔에서 공짜 잠까지 자 파문이 일었을 때도 청와대는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해 구두경고만 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비서실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술자리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고까지 했다.

2006년 ‘황우석 사건’ 당시 박기영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은 연구비를 과다하게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나 자체 조사 없이 사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는 지난해 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에 다시 위촉됐다.

“불법자금 한나라 10분의1 넘으면 사임”

수사결과 8분의1… “넘더라도 수억 불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 같은 ‘이중성’은 노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는 정치권과 법조계의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12월 “내가 한나라당이 쓴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보다 더 썼다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10을 받았든, 1을 받았든 똑같은 범법행위인 데도 ‘한나라당보다 10분의 1밖에 받지 않았다면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되느냐’란 이상한 인식을 드러낸 것.

대검 중수부가 2004년 3월 중간수사 발표에서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한나라당이 823억 원, 노 대통령 후보 캠프가 한나라당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19억 원이라고 밝히자 노 대통령은 “성격에 있어서 약간의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이 포함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넘더라도 수억 원을 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도덕적 잣대는 단순하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비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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