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재설정?” 어민들 부글부글

  • 입력 2007년 9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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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출어한 한 어선(오른쪽)이 연평도 앞바다에서 꽃게잡이 조업을 하고 있다. 어선 주변에 해군함정(왼쪽)과 해양경찰청 특공대원(가운데) 등이 삼엄하게 해상 경계를 서고 있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출어한 한 어선(오른쪽)이 연평도 앞바다에서 꽃게잡이 조업을 하고 있다. 어선 주변에 해군함정(왼쪽)과 해양경찰청 특공대원(가운데) 등이 삼엄하게 해상 경계를 서고 있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메마른 ‘꽃게 어장’의 시름… 정상회담이 걱정스러운 연평도

《“꽃게가 잘 안 잡혀요. 저기 북쪽으로 2∼3km만 더 나가면 많이 잡을 수 있을 텐데…. 지금 같으면 내년에는 출어를 포기해야 할까 봐요.” 4일 오후 4시경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나루터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연평어장. 9t 어선 신복호 갑판에 서서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선장 곽용근(47) 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날 오전 5시 반 나루터를 떠나 꽃게잡이에 나섰지만 선원 4명이 끌어올리는 그물에 걸린 꽃게가 흡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10시간 넘게 조업했지만 잡힌 꽃게는 겨우 300kg가량에 그쳤다. 곽 선장은 “2002년까지 연평도에서는 어선 1척에 매년 5억 원 이상 벌었지만 2004년부터 연간 어획량이 300t 이하로 떨어져 생활비도 벌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장 확대 우리 요구 외면하면서 北에만 고분고분” 분통

출어비 못건져 노는배 수두룩… “NLL재설정땐 집단행동”

옹진수협이 최근 꽃게 1kg을 5000원에 매입하고 있지만 선원 인건비, 기름값, 어구값 등을 계산하면 하루 출어비용만 150만 원이 넘어 남는 게 없다는 설명이다.

1일부터 하반기 꽃게 조업이 시작됐지만 국내 최대 꽃게 산지인 인천 옹진군 연평도 어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수년째 꽃게가 잡히지 않아 선주들 상당수가 4억∼5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 많은 선주가 출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나루터에 어선을 묶어두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연평도(소연평도 포함)의 꽃게잡이 어선 53척 중 바다로 나간 배는 22척뿐이었다.

다음 달 2∼4일 평양에서 열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가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은 그렇지 않아도 조업이 부진해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어민들을 들끓게 만들고 있다.

연평도 어민과 옹진군은 그동안 꽃게 어장을 NLL 방향으로 늘려 줄 것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해 왔다.

해가 저물어 조업을 끝낸 어민들이 부두 앞 식당에 모였다. 소주 한잔을 걸치며 식사하던 어민들은 NLL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꽃게가 안 잡혀서 2000년부터 NLL 방향으로 어장을 늘려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정부는 못 본 체합디다. 그런데 북한에는 왜 그렇게 관대한 겁니까. NLL 재설정을 논의하면 북한에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김광춘 대연평어촌계장)

“대한민국 영토를 구분하는 국경선 NLL을 ‘안보적 개념’으로 본다는 건 지나치게 ‘친북적’인 사고방식 아닙니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깁니까.”(최율 연평도주민자치위원장)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이 NLL 주변에 출몰해 ‘싹쓸이 조업’을 하는 데다 해양 환경이 변화하면서 꽃게 어획량이 급감하자 NLL 방향으로 어장을 81km²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백령도와 대청도 어민도 같은 이유로 어장 105km²를 늘려 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과의 충돌 등 안보 문제를 이유로 승인하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어민들은 2005년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어로허가구역을 넘어 해상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2005년부터 북한이 황해도 해주 앞바다에서 대규모 모래 채취 사업에 나서면서 어장이 황폐화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윤길 옹진군수는 “6·25전쟁이 끝난 뒤 1953년 그어진 NLL은 그동안 어민과 군이 지켜온 실질적인 ‘해상 분계선’”이라며 “꽃게가 잡히지 않아 생계대책을 요구해 온 어민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이 NLL 재설정 문제로 더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어민들은 정부가 어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추진하는 ‘감척사업(배의 수를 줄이는 사업)’에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인천시는 정부 지원을 받아 75억 원을 투입해 내년까지 30척의 꽃게잡이 어선을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어민들은 “보상을 받아 빚도 못 갚는다”며 시큰둥한 분위기다.

최 위원장은 “정부가 어민들의 요구는 외면하면서 북한의 NLL 재설정 요구에만 응한다면 어민들은 집단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면서 “연평해전, 서해교전 등으로 산화한 해군 장병들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바쳐 NLL을 지키려 했는지 국민이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평도=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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