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촉발시켰다.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의원들을 고소하기로 함에 따라 노 대통령은 대선 정국에서 이 후보를 직접 상대하는 형국이 됐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선에 적극 개입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청와대가 고소 방침을 밝히기 며칠 전인 지난달 31일 노 대통령은 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 후보에 대한 비판을 재개했다.
노 대통령은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 대통령의 잇단 정치적 발언에 대해 선거법 9조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한 이후 대선후보나 정치 상황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PD연합회 기념식에서 손 전 지사를 겨냥해 “김영삼 대통령의 3당 합당이 틀린 것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범여권으로 넘어온 사람한테 줄 서 가지고 부채질 하느라고 아주 바쁘다”며 “YS는 건너가면 안 되고 그 사람은 건너와도 괜찮냐 이거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노 대통령이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대한 분명한 지침, 즉 ‘한나라당을 탈당했거나 한나라당 성향의 인사는 범여권 대선후보가 될 수 없으니 친노(親盧·친노무현 대통령) 세력은 결집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
노 대통령은 이 후보에 대해서는 “무슨 무슨 의혹이 있다 그러는데…(언론이) 진실이 어느 것인지 역량이 없어 못 들어가는 모양인데, 일부 언론은 빨리 덮어라 하는 것 같다”며 “저희는…위장전입 한 건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후보를 검증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한나라당은 반발하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에 대해 “선관위에서는 사전 질의 안 받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선관위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문제를 삼겠죠”라고 말했다. ‘해 볼 테면 해 봐라’는 뜻이다.
손 전 지사 측 관계자는 “손 전 지사는 이미 노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손을 떼라’라고 말했지 않느냐”며 “정치에 관여할 시간과 여건이 되면 국정을 하나라도 더 챙겨라”라며 불쾌해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 전방위로 치닫고 있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라고 말했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 이 후보에 대한 청와대 고소가 선거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선관위의 분위기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