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결과 그(정 전 비서관)에게 불법 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측근비리’라고 이름 붙여도 제가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 전 비서관은 진실을 말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서 대통령과 정권의 부담을 덜어 주어야 한다.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신정아 씨와의 관계를 끝까지 숨기다 결국 대통령을 더 어려운 궁지로 몰아넣은 걸 보지 않았는가. 정 전 비서관의 모습은 진실의 꼬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수풀 속으로 머리만 틀어박는 꿩을 닮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5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며 시스템에 의한 국정 운영을 강조했다. 인사(人事)와 정책을 인간관계가 아닌, 시스템으로 시행해 원칙을 바로 세우고 비리와 부정의 개입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드는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와 정 전 비서관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대처를 보면 시스템이란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변 전 실장이 신 씨를 비호한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대통령비서실은 그의 말에만 의존한 채 신 씨의 청와대 출입 기록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세무조사 무마 조로 1억 원의 뇌물이 오고간 사건에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연루됐는데도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기는커녕 사표 처리로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 이 정권의 시스템은 남에게는 엄격하고 제 식구들에게는 관대한 이중 장치일 뿐이다.
스스로 ‘게이트가 없는 정권’이라고 부르는 오만과 독선, 언론의 의혹 제기를 사시(斜視)로 바라보는 자세가 자체 검증시스템을 무력화(無力化)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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