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의 : 안보 문제 탈정치화 외국 사례
이날 오전 회의에서는 미국과 독일, 일본이 민감한 안보정책을 결정하면서 어떻게 정치색을 벗고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각국 전문가들이 사례를 발표했다.
한스 슈미트 독일 요한 볼프강 괴테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등의 협력이 독일의 안보정책 탈정치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슈미트 교수는 “독일은 이러한 국제 관계 속에서 안보정책 결정 과정의 정치적 색채를 벗고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 민주주의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당시 독일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무엇보다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탈정치화를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리처드 커켄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커켄들 교수는 “트루먼 대통령은 현실적인 감각과 인내심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지지를 받는 외교정책을 수립했다”며 “여기에는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은 조지 마셜처럼 훌륭한 조언자의 의견을 중용해 외교정책 결정에 반영했고, 이는 냉전 기간에 미국이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정책을 펼 수 있게 한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시노다 도모히토 일본 고쿠사이(國際)대 교수는 안보정책을 놓고 첨예하게 벌어지던 일본 정치권의 대립이 냉전 이후 무너졌다고 말했다. 시노다 교수는 “냉전 이후 일본의 정당들이 현실감을 찾으면서 안보정책 수립 과정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이는 자위대 파병 문제 등 안보정책에 대한 여론 변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제2회의 : 한국의 당면과제
전문가들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안보 문제의 정치화 사례를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로 나누어 조명했다.
김일수 충북대 교수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정치화된 안보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이라크 파병 문제의 정치화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 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한미 간 안보 문제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실리적인 선택과 외교역량 강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윤영 중앙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이 뒤섞이면서 대북정책이 외교정책보다 우선시되기도 해 국가이익과 안보가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외정책에서 대북·통일정책 분리 △대북유화정책의 점진적인 추진 △대북정책의 투명성과 제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호 국방대 교수는 민주화 사회의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 다양하고 참신한 의견이나 대안이 제시되고 정책 결정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문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지고 외교안보 분야의 기밀 유지가 힘들어지는 단점도 있다는 것.
#제3회의 : 남북 정상회담과 국내정치
참석자들은 다음 달 2∼4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안인해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국민의 수준도 높아져 정상회담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경제지원 협력에 관심이 높은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태규 한겨레신문 편집부국장도 “이번 정상회담이 대선에 미칠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정부가 대선 정국에 영향을 주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핵 문제 논의와 관련해 “미국의 보상 정도에 따라 결정될 북 핵 폐기 문제에 대해 정상회담에서 ‘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욕심”이라며 “그동안 공개적으로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으로 욕심을 낮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도 “북핵 문제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확고한 언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정리=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남북 정상회담의 대선 영향력’ 격론▼
“시기 논란에 정파적 목적 얻기 힘들 것”
“대형 논쟁 유발할 땐 표심 움직일 수도”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큰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남북한이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회담 개최도 정부의 외교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북-미관계 진전에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대선 국면에서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큰 변수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2000년 1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임기 말의 정부가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하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도 “대선을 앞두고 정상회담이 열려 논란을 가져오고 있다”며 “이런 논란으로 대선에 미치는 효과가 줄어들면서 정부가 바라는 ‘정파적 목적’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최명길 MBC 선임기자는 “한국 대선은 마지막에 접전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았고 올해 대선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대형 사회적 논쟁이 유발되고, 이로 인해서 이념적 성향에 따라 사회적 분화가 이뤄져 표심(票心)을 움직인다면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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