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들은 ‘칩거’를 자신의 의견이나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 표현을 극대화함으로써 극적인 반전 효과를 노리는 일종의 정치 기법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칩거 사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대표였던 1990년 10월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 파동 때 당무를 거부하고 경남 마산으로 내려가 버린 일이다. 당내 주류였던 민정계가 YS를 대표에서 끌어내리고 궁지로 몰기 위해 그해 5월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 YS가 만든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를 공개한 데 대해 강력 반발한 것이다.
YS는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는 나를 음해하려는 행위”라며 ‘내각제 포기’ 등을 내걸고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했으나 답변이 없자 마산 칩거를 결행했다. 결국 여권의 분열과 정국 파행을 우려한 노 대통령은 내각제 포기를 약속하며 YS의 손을 들어 주고 만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동안 선두를 달린 이인제 후보도 자택 칩거를 한 적이 있다.
이 후보는 당시 ‘이인제 대세론’을 바탕으로 무난히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일격을 당한 뒤 ‘청와대 개입설’을 제기하며 칩거에 들어갔다.
이 후보는 “한화갑, 김중권 후보 사퇴가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 등 김대중 대통령의 핵심 세력의 구상에 따른 것이며 이들 세력이 광주 경선에서 민주당 청년 조직인 ‘연청’을 움직여 노 후보를 막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반전(反轉)에 실패했고 그해 4월 17일 결국 경선을 포기했다.
손 전 지사는 3월 한나라당 경선 룰 논의가 막판에 이르렀을 때 경기도 강원도의 산과 절을 돌아다니며 5일간 잠행한 뒤 전격 탈당한 바 있다. 이때 손 전 지사는 ‘새로운 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빅2’ 구도에서 패배하고 주저앉느니 탈당해 대선 도전 기회를 노려보겠다는 속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