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협상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로버트 갈루치

  • 입력 2007년 9월 27일 02시 59분


1994년 제네바 협상 당시 로버트 갈루치(현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악수하는 모습. 갈루치 원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 의혹을 비롯한 최근 북핵 문제의 심상치 않은 기류가 남북 정상회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94년 제네바 협상 당시 로버트 갈루치(현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악수하는 모습. 갈루치 원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 의혹을 비롯한 최근 북핵 문제의 심상치 않은 기류가 남북 정상회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닷새 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다층적이다. 남북 관계의 진전을 기대한다는 공식 발표의 뒷면에선 우려 섞인 당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저변에 깔린 논리에선 한국 정부와 확연히 대비되는 ‘미국의 시각’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을 이끌었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현재 북한 핵 협상에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의혹이라는 먹구름이 생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무엇인지, 어떻게 다뤄지기를 원하는지 미국의 견해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협정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사진)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은 대표적인 대북 협상론자다. 그러나 26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정상회담과 북핵 문제의 진행 상황에 대해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6자회담이 순항하는 상황에선 남북 대화는 건설적이며 (6자회담과) 보조가 맞는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간에 핵 문제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을 때 문제가 생긴다. 북-미 간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한국이 미국의 우려사항을 반영하지 않고 남북 관계를 평상시처럼 추구하면 한미 간에 틈이 보이게 되고, 이는 6자회담 자체를 손상시키는 파괴력이 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작은 먹구름이 지평선에 생기고 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파괴한 시설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부에선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과 관련된 프로젝트라고 보고 있다. 이는 6자회담에 나쁜 뉴스다. 만약 한국이 이 문제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면 워싱턴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며 6자회담의 역동성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북한 선박이 시리아에 물품을 하역한 게 이달 3일이다. 6자회담이 한창 진전되고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북한이 왜 논란을 부를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북한 지도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일일 가능성이 있다. 과거 중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북한이 시리아에 넘겨준 게 핵이 아닌 화학무기나 미사일이라 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나쁜 시기에 발생해 6자회담의 추동력을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27일 시작되는 6자회담에서 이번 논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미칠까.

“노 대통령이 미국은 이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기를 원하는지 들을 수 있도록 서울과 워싱턴의 고위급들이 충분히 협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상회담 전에 한미 양국이 충분히 협의하는 게 안전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 대통령도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말하라는 것은 가서 싸움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남북 간의 많은 이슈가 논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 남북 관계가 북-미 간의 현안을 반영하지 않은 채 동떨어져 진행된다면 한미 간에 틈이 벌어질 것이다. 핵 문제가 다른 모든 이슈의 논의를 막아서는 안 되지만 남북 관계는 핵 문제 진전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반영하여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노 대통령은 평화체제 구축과 경협을 최대 의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핵 문제의 진전과 관계없이 너무 많은 당근이 주어질 경우 6자회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 같은 우려에) 동의한다. 신중해져야 한다. 나는 당근을 제공하는 데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이는 신중히 고려되고 조절되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커다란 합의를 이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한국과의 평화와 미국-유엔과의 평화를 분리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했던 6·25전쟁 공식 종료의 일부분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분리해서 다루도록 고무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도움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미국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공식 종전(終戰)으로 이어질 평화체제 구축 과정의 한 구성원이 되어야지, 남북한만 분리된 그들만의 프로세스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핵 문제는 거의 다 풀려 가는 문제’라고 말했다. 핵 문제가 거의 해결됐다고 보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기술적으론 단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치적으론 다르다. 매우 오래 걸릴 것이다. 정말 어려운 협상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그렇게 예상하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건물(핵 시설)을 잠그고 사찰관이 잠긴 걸 확인하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일은 북한이 핵 물질과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소재와 실태에 대해 정확히 말하게 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이 가능한 한 빨리, 충실히 약속을 이행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로버트 갈루치::
1974년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군축 등을 담당하다 1992년 정치·군사담당 차관보가 됐다. 제1차 북핵 위기 속에서 열린 1994년 제네바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로 북한과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1996년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으로 옮겼으며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호되게 비판해 왔다. 뉴욕주립대 졸업, 브랜다이스대 정치학 박사. 6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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