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경협 선심, 쌓이는 재계 근심

  • 입력 2007년 9월 29일 03시 19분


요즘 재계에서는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걱정이 적지 않다. 특히 현 정부와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서 대북(對北) 경제협력 방안과 관련해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많은 기업인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가 경제 논리를 따지지 않고 자칫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수준의 대북 경협을 약속할 경우 차기 정부는 물론 해당 기업들로서도 후유증이 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의 해주 남포 등지에 제2의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방안을 비롯해 △도로 항만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지원 △전기 등 에너지 지원 △조림사업 지원 △새마을운동 지원 등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각종 대북 경협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만약 냉정함을 잃고 ‘퍼주기식’으로 대규모 대북 지원 사업에 합의하면 그 비용은 결국 기업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정권과 손잡고 무리한 대북 사업을 벌였다가 한때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현대그룹의 쓰라린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이 경제성을 무시하고 수익성이 낮은 경협에 말려들 경우 자칫하면 해당 기업이 결정적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재계로서는 부담스럽다.

대북 경협 확대가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미국이 적성국으로 분류한 북한과의 경협 확대에 나서면,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투자가들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대북 경협 확대가 국내 기업들의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의 소비자 여론을 자극해 제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민감한 전략물자가 많은 전자·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북한이 ‘테러 지원국’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남북 경협을 확대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 남북경협위원장인 박영화 삼성전자 고문은 올 8월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북한은 (테러 지원 국가에 대한 제재를 담은) 바세나르협약에 따라 대북 반출 물자에 제약이 따르고 수출에서 특혜 관세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현 정부가 임기 말 이벤트성 성과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남북 경협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채산성이 없는 사업을 놓고 ‘등을 떠밀듯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사회의 각종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핵 문제 등 정치적인 불안 요인을 우선 해소한 다음 항만 도로 전기 용수 등 각종 사회 인프라를 확보하고, 이후 투자 안전 보장 등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본격적인 경협 확대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은 28일 내놓은 ‘북한 경제 회생의 핵심과제’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기간산업 육성을 위해 새로운 특구를 건설할 경우 사회간접자본 재원 조달 부담과 기존 공단으로의 안정적인 인력 공급 어려움 등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2010년까지는 북한에 새로운 경제특구를 건설하기보다 기존 개성공단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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