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선 아니라면 우리 아들은 뭘 지키다 죽었나”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 서해교전 유족-연평 주민들 분노

“대통령 말 듣고 귀 의심… 위로는 못할망정 상처만 건드리나”

연평 주민 “장병들 호국의지 부정하는 망언”… 규탄시위 채비

향군 “필수적 영토선인데… 부적절한 발언에 충격 금치못해”

1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들은 서해교전 전사자 유가족들과 서해 연평도 주민들은 감정이 격해져 노 대통령에 대해 거친 발언들을 쏟아냈다.

2002년 6월 29일 NLL을 넘어온 북한군 선박과 교전을 벌이다 숨진 장병들의 유가족들은 숨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슬픔과 분노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우리 아들들 왜 죽었단 말이냐”=고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54) 씨는 “내 아들이 숨진 것은 NLL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면 그걸 지키다가 숨진 우리 아들들은 왜 죽었단 말이냐”며 “그렇다면 당장 서해의 함대 사령부를 해체하고 군인들도 다 귀가시켜라”라며 울분을 토했다.

서 씨는 “처음엔 (노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들이) 대통령의 말실수려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며 “임기가 얼마 안 남았다지만 지나친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60) 씨도 “어떻게 NLL이 우리 영토선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느냐”며 “하도 어이가 없어 ‘그저 개념 없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 한상국 중사의 아버지 한진복(62) 씨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아픈 상처를 건드리니 (대통령의) 막말에 무슨 대꾸할 가치가 있겠느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힘이 들 뿐”이라고 말했다.

고 조천형 중사의 아버지 조상근(65) 씨 역시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며 “원래 그분에게는 기대했던 게 없다”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이야 권력자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힘겹게 말문을 연 고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5) 씨는 “하지만 아무리 권력자라도 국민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윤 소령의 외삼촌(60)은 “(대통령이) 제발 유족들을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며 “유족들의 바람은 자꾸 그때(서해교전)를 생각나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호국의지 부정하는 망언”=NLL을 ‘생명선’으로 알고 살아온 인천 옹진군 연평도 주민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한편 NLL 재설정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떠오를 것을 우려했다.

최율 연평도주민자치위원장은 “수십 년 동안 서해5도 어민과 해군 장병들이 지켜 온 생명선인데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감히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규탄시위 등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춘 대연평어촌계장은 “연평해전, 서해교전 등으로 산화한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NLL을 지키려 한 호국 의지까지 부정하는 망언으로 대통령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자 평소 자신의 ‘친북적’인 사고방식을 마음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며 “NLL 재설정을 대통령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한편 재향군인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NLL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를 해 왔고 우리 영토인 서해5도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영토선”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으로 충격과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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