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의 수사觀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수사에 ‘늦은 정의’는 소용 없어 검찰권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 무리한 수사 보다 ‘무능’이 낫다”

11일 새 검찰총장에 내정된 임채진(55·사법시험 19회) 법무연수원장은 그동안 검찰 수사의 원칙을 강조해 왔다.

검찰 내부에선 임 내정자가 강조해 온 ‘품격 있는 수사’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비겁한 수사를 하지 말라”=임 내정자는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 때 수뢰 혐의로 조사하던 기업인을 탈세 등 다른 혐의로 압박하는 수사 방식을 “비겁한 짓”이라고 질타했다.

이는 검찰이 혐의 입증이 어려워질 경우 해당 사건과 무관한 다른 혐의로 압박하는 수사 관행을 비판한 것이다. 검찰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별건(別件)’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인 셈이다.

임 내정자가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에게 “수사를 해 보고 혐의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차라리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임 내정자는 평소 “‘늦은 정의’는 필요 없다”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검사들에게 주문해 왔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그는 “1년 동안 검사와 가족, 주변 사람들이 계좌 추적과 출국 금지를 당하고 검찰에 불려 다닌다고 생각해 봐라. 차라리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까지 말했다. 그만큼 특별수사를 비롯한 각종 수사의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화두”=임 내정자는 올 3월 서울중앙지검장 이임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대 검찰의 화두”라며 “정치권력 또는 특정 정치세력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거나, 검찰권을 오남용하는 일이 생기면 우리의 꿈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임 내정자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공직부패수사처 설치와 형사소송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과 맞섰고,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때는 ‘일심회’ 사건 등을 놓고 청와대와 불화를 빚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인들에게 “검사 생활하면서 목이 달아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내정자는 2004년 춘천지검장으로 있을 때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었던 정만호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을 구속시키는 등 선거사범 관리에도 엄정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은 법의 수호자로서 사회운영시스템을 오염시키는 반칙행위에 단호하게 휘슬을 불어야 한다”고 검사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검찰권은 국민이 부여한 것”=임 내정자는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식에서 “검찰권과 수사권은 검찰이 가진 천부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이 우리에게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행사하게 되는 소중한 권한”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취지라고 검찰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그는 11일에도 “겸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이 검찰에 무엇을 바라는지, 검찰이 어떻게 해야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지 깊이 헤아려 보겠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법원과의 관계에서도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법조 비리 수사’를 강행해 현직 고법 부장판사를 구속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자들에 대해 법원이 무더기로 영장을 기각하자 재청구를 지시했고, 다시 기각되자 법원에 준항고를 하는 등 정면 대응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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