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카드 역할… 당내 지원조직도 느슨
신당 안착 주력하며 ‘다음 기회’ 노릴듯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다.”
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가 확정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두고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며 14년간 몸담아 온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까지 대권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손 전 지사. 그의 ‘정치 실험’은 범여권 합류를 선언한 지 100여 일 만에 ‘일단 실패’로 낙착됐다.
손 전 지사도 이 같은 처지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전날 지역경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탁분 개표 결과를 확인한 뒤 패배를 시인하는 자리에서 일부 의원이 “당의 승리를 위해 절대 사족을 붙이지 말라. 100%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이에 수긍했다고 한다.
따라서 손 전 지사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의 편을 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탈당이라는 천형(天刑)을 짊어진 그가 다시 ‘경선 불복 정치인’ 소리를 들을 처신을 한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변인 격인 우상호 의원은 이날 “손 전 지사는 ‘이긴 후보를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새로운 정치의 꿈은 단순히 경선용만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경선에 승복한 손 전 지사가 이처럼 개혁을 외치며 경선 이후 분열 가능성이 없지 않은 당의 통합을 이끌어 내 향후 당권과 내년 총선을 향한 지분을 확보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경선에서 조직 열세를 절감한 손 전 지사는 당내 계보 형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지만 과연 ‘손학규 세력’이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형성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손 전 지사가 ‘흥행 카드’로 긴급 영입된 측면이 강한 데다 지지 세력도 경선 모양새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둔 일부 중진과 열린우리당 색깔 빼기를 원한 민주당 탈당 의원, 수도권과 386 소장파 의원 등으로 손 전 지사와의 연대감이 그다지 깊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손 전 지사가 경선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했을 때 일부 의원은 불만을 토로하며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이해찬-친노 선택은
김근태와 연대 통해 당내 세력화 모색
친노핵심, 총선대비 독자노선 갈수도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당초 약속대로 경선에 승복한 뒤 당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제안해도 ‘상임고문’ 정도의 상징적 자리 이상은 맡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전 총리 측 캠프 핵심 관계자는 “조직원들도 ‘당원으로서 도와야 한다’는 말은 듣고 있지만 정 후보 측의 불법 조직 동원 선거에 대한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솔직히 ‘필승 후보’라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돕는 것보다는 자구책 마련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막후에서 ‘이대로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에 휩싸인 캠프 인사들이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범민주 개혁세력’의 진지를 구축하는 데 지원사격 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내에서 공고한 세력화를 도모해 1월 전당대회 때 이 전 총리가 당권을 잡은 뒤 민주세력을 ‘주류’로 해서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위해 이 전 총리는 2선에 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힘을 합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장은 13일 이 전 총리와 만나 “민주세력의 명분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 전 총리도 “김 전 의장이 앞으로 우리 세력의 존속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 측은 캠프 내에서 미세한 세력 분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기여도가 낮았던 데다 기존의 김 전 의장 측 인사들과 융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참여정부평가포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세력 등 ‘친노(親盧·친노무현) 근본주의’ 세력은 내년 총선에 대비해 독자 노선을 걸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이수성 전 국무총리, 김혁규 전 경남지사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영남 신당’ 창당에 합류하는 것도 하나의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 신당 내 세력화는 김 전 의장 측 인사들과 중진의원 그룹을 포함한 ‘중도 친노 그룹’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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