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어른스러운 대통령을 보고 싶다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12월 19일 실시하는 제17대 대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났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치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반면에 의혹을 안은 자, 신의를 저버린 자, 경선 불복을 일삼은 자라는 치부가 드러났다. 제도화된 정치과정인 본선보다 제도화되지 않은 경선과정이 더 부패했다는 오점도 남겼다. 다만 반민주적 경선불복자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 개정 공직선거법의 영향 때문인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줬다.

이제 누가 어떻게 나라를 반듯한 정상국가로 이끌지 선택해야 한다. 후보의 정책, 비전, 정치철학은 장밋빛 부국안민으로 치장돼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지도자여야 한다. 흐트러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도 다잡아야 한다.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물론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 있으면 탄핵심판을 통해 사직시킬 수 있다. 그러나 2004년 대통령 노무현 탄핵사건에서 보듯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장 주민소환제도는 있어도 대통령 국민소환제도는 없다. 갈아 치우고 싶은 대통령이 있어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아무 대책이 없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5년을 참고 지내야 한다.

군주가 나라의 주인이던 시절에도 어진 군왕은 무한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길흉화복을 임금 탓으로 돌렸다. 가뭄에 들판이 타들어 갈라치면 나라님은 자신의 덕 없음을 한탄했다.

공화제 국가에서 선출된 군주인 대통령도 정치적 도덕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남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부덕을 자책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만은 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역사와 국민 앞에 옷깃을 여미는 겸허한 자세를 갖추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년이면 환력을 맞는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성공한 대통령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아야 할 이승만과 근대화 산업화를 성공시킨 박정희는 장기집권욕으로 몰락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나 아니라도 국정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며 헌법에 없는 대통령중임제를 정립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만이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국민통합에 실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진실과 화해를 몸소 실천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치는 지나친 자기주장과 편향된 사고로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다. 이제 증오와 갈등의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헌법 제1조 제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여 주권재민을 천명한다. 국가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권력분립주의 원칙도 채택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나라에 큰일이 벌어지면 온 국민은 청와대를 쳐다본다.

대통령은 나라의 어른이어야 하고 어른스러워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큰 귀를 가져야 한다. 다원화된 사회 각계각층에서 분출하는 갈등을 삭이는 넓고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포니 반도체 와이브로에 이르는 민간신화를 재창조할 수 있는 동인(動因)을 부여해야 한다.

권력의 심장부에 국민의 목소리를 수렴하지 않는다면 대통령만의 불행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국민통합 정책능력 미래비전과 같은 대통령이 갖춰야 할 소중한 덕목이 2% 부족해도 국민을 편하게 모시고 섬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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