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 이명박
5년 전 10월 23일과 현재, 이회창 이명박 두 후보의 대세론에 차이가 있다면 이회창 후보는 당시 2, 3위인 정몽준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를 합한 것보다는 지지도가 낮았으나 이명박 후보는 나머지 후보들의 지지도를 합한 것보다 더 높은 지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해 상대 정파가 강력한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다.
5년 전에는 이미 김대업 씨가 주도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더는 ‘뉴스’가 아닐 정도로 정가와 여론에 만연해 있었다.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인 당시 윤여준 의원이 최규선 씨에게서 20만 달러를 전해 받았다는 당시 민주당 설훈 의원의 주장도 이미 제기된 상황.
여기에 11월에는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 씨가 기양건설로부터 10억 원의 검은돈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돼 그해 대선은 ‘이회창 3대 의혹’이 내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후 재판을 통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는 이명박 후보 관련 각종 의혹이 범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의 소재가 되고 있다. 특히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의 한국 송환을 둘러싸고 이명박 후보 측이 미 연방지방법원에 김 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재요청하고 이를 다시 취소한 것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 측이 김 씨의 귀국을 방해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 측이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2007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 A6면)
이에 이명박 후보 측은 김 씨를 ‘김대업의 재림’으로 규정하며 김 씨의 배후에 범여권과 정동영 후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적절한 시기에 정 후보가 김경준 씨의 뒤에 있다는 점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2007년 10월 22일 연합뉴스)
대세론을 형성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충성 경쟁’이 당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도 비슷하다.
5년 전 이회창 후보를 향한 실세 의원들 간의 내밀한 경쟁은 아직도 회자된다. “정형근 의원은…이 후보를 하루 평균 4, 5번씩 독대하고 있다. 정 의원의 독주가 계속되자 시샘 어린 목소리도 적지 않다….”(2002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 A5면)
‘이명박 대세론’은 이회창 후보를 넘어서는 지지도에 최근에야 전열을 갖춘 범여권의 상황 등으로 더 뜨겁다. ‘BBK 사건’의 김경준 씨 송환 문제의 대응을 놓고 논란이 이는 것도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나친 충성 경쟁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이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밝힌 대로 김경준 씨와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금융감독원과 법무부 등에서 확인해 줬다는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2007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 A6면)
이명박 후보가 경선 직후부터 문제 삼은 ‘후보 곁에서 눈도장 찍기’ 행태에 대해서는 5년 전에도 비판이 적지 않았다. 5년 전 10월 23일자 동아일보 A5면은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구당 위원장은 지역구를 지키면서 대선을 준비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고 보도했다.
■ 노무현 & 정동영
5년 전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현재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을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뚜렷한 대립각 형성을 통해 승부수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비슷하다.
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부터 한나라당을 보수와 구 정치 세력으로 규정하며 정치 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주장했고, 정 후보도 “한나라당식 정글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차별 없는 성장을 추진하겠다”(2007년 10월 19일자 동아일보 A6면)며 이명박 후보식 경제 논리를 ‘상위 20%를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2002년 여름부터 민주당 내에서 제기된 ‘노무현 후보 교체론’은 월드컵 특수로 주가를 올리던 ‘국민통합21’의 정몽준 의원을 대안으로 지목했고 ‘반(反)이회창, 비(非)노무현’ 전선 구축 시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 의원의 지지도가 정체 국면에 접어들자 결집의 동력(動力)이 떨어졌다.
“지난주 4자 연대 논의가 급물살을 탄 이후 실시된 각 여론조사에서 정 의원 지지도가 정체 내지는 소폭 하락으로 나타나자 ‘세력 확장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견해가 많이 제기됐다.”(2002년 10월 23일자 조선일보 A5면)
정 의원이 영입하려던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한나라당 복귀를 저울질한 것도 이 무렵. “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복당) 가능성이 없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2002년 10월 23일자 중앙일보 A8면)
이후 정 의원은 독자 신당을 창당한 뒤 ‘반이회창 연대’ 구축을 위해 그해 11월 22일 노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책과 노선의 화학적 결합 없이 진행된 단일화는 대선 전날 정 의원의 노 후보 지지 철회 선언으로 깨졌다.
2007년 10월,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는 경선이 지연된 만큼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일화 필요성은 5년 전보다 훨씬 절박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도를 더한 것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대동소이한 정국
대선을 57일 앞둔 23일, 5년 전과 현재의 정국은 ‘한나라당 후보 강세’라는 공통된 상황을 맞고 있다. 5년 전에는 정몽준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고 현재는 이명박 후보라는 1강과 정동영 후보라는 1중, 그리고 문국현 이인제 권영길 후보 등의 다약(多弱) 구도로 세분됐을 뿐이다.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추진은 이처럼 ‘1강’ 후보가 고착되어 가는 선거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정치권에 강력한 유동성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5년 전과는 달리 현재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이 범여권의 선거 구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 기타 후보들
민주당 이인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뛰고 있다.
민주당 이 후보는 5년 전 노무현 후보에게 밀려 경선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는 ‘민주당 탈당→자민련 입당→민주당 복당’이라는 정치 행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거듭나 정치적 재기를 위한 최소한의 발판은 마련했다는 평을 듣는다.
5년 전 민주노동당 권 후보는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길 정도로 대중성을 확보해 2년 뒤인 2004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재 대선 3수에 도전 중인 권 후보는 민노당의 지지도 정체 등으로 아직까지는 약진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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