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 꾸미는데만 850만원 배정
‘비용분담’ 피감기관에 e메일 공지
《국정감사 과정에서 피감기관 기관장 등이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에게 식사나 술을 접대하거나, 준비를 과도하게 해 예산을 낭비하는 빗나간 국감의 행태는 올해도 여지없이 반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위의 경우 단 하루 열릴 국감에 대비해 피감기관들이 고급 의자 등을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 원대 예산을 책정했다.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기 위한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세금 낭비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보건복지위 행정자치위 건설교통위 농림해양수산위의 국감에서도 의원과 보좌관들은 피감기관의 돈으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들의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이들 의원이나 피감기관 관계자들은 “그 정도는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관행”이라고 무신경하게 답하고 있다. 》
30일 열리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감기관들이 수천만 원대의 국감비용을 책정해 국민의 혈세를 남용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문광위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7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이날 감사를 받는 피감기관들이 당일 국감에 드는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약 4200만 원. 피감기관 중 간사 역할을 하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측은 △의원과 보좌관의 중식과 석식, 카메라, 마이크, TV, 문구류, 다과 생수, 안내요원, 주차요원, 안내판, 리무진 버스 임차 등의 비용으로 2700만 원 △국정감사 테이블, 의자, 파티션 공사 등 850만 원 △네트워크 전화 전기 통신공사, 노트북PC, 복사기, 프린터, 무선 랜 등 650만 원 등 총 4200만 원을 하루 동안의 국정감사 예산으로 책정한 뒤 최근 피감기관들에 e메일로 공지했다. 국감 비용이 총 4200만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각 기관이 나누어 비용을 분담하자는 내용이다.
정확한 내용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자 국감 담당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담당자는 “각 기관에 보낸 e메일은 개인적인 체크리스트일 뿐 공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단지 개인적으로 쓴 체크리스트라면 왜 피감기관에 모두 보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진흥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감사 장소를 국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려면 그 정도 액수는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감 비용을 나눠 내야 하는 관련 피감기관의 관계자들은 “지방도 아니고 서울에서 하는데 이렇게 많은 국감 비용이 들어야 하나” “하루 국감을 위해 행사장의 의자, 가구 등을 고급으로 (준비)하는 건 문제 아니냐”라며 비용 분담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이들 피감기관은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결국 단 하루 국감을 위해 국민의 혈세를 수천만 원씩 쓰는 셈이다.
문광위 국감 중 국회 이외의 장소에서 열린 국감 비용을 보면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중재위, 한국방송광고공사, 언론재단, 연합뉴스의 국감 비용은 약 500만 원 이내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상임위-피감기관 곳곳서‘향응’
복지위-복지부 일식집 거쳐 노래주점까지
행자위-경찰청 의원 8명과 고깃집서 회식
건교위-인천시 보좌관 식대까지 모두 부담
농림위-마사회 의원 3명 국감 전날도 접대
▽보건복지위=28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회 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1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감이 끝난 뒤 같은 날 오후 7시 반경 청사 주변 호텔 D일식집으로 이동해 9시 반경까지 식사를 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1차 식사 장소에는 복지위 소속 의원 8명과 복지부 장차관, 피감기관 관계자 9명 등 총 17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의 밥값과 술값으로 106만 원이 나왔으며 이 비용은 복지부 관계자가 계산했다.
1차가 끝난 뒤 이 호텔 지하에 있는 K노래주점으로 이동해 맥주와 양주 등 2차 술자리를 가졌다. 의원들은 50여 분간 맥주와 양주를 마셨으며 술값 25만 원은 역시 복지부 쪽에서 계산했다.
이에 대해 복지위의 한 야당 소속 의원은 “야당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어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른 의원들은 참석 사실을 부인하거나 대답을 거부했다.
▽행정자치위=행자위 소속 의원들은 25일 경찰청 국감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제공받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회의원 8명은 경찰청 간부 10여 명과 함께 국감이 끝난 뒤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에서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식사비는 주물럭 33인분 115만 원을 비롯해 소주 맥주 등의 술값을 포함해 총 134만 원. 경찰청이 이날 의원들의 식사비 명목으로 지출한 돈은 구내식당 식사비 50만 원을 포함해 모두 184만 원으로 확인됐다.
이날 저녁식사 자리에는 8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건설교통위=건교위 의원들도 25일 인천시에 대한 국감을 마친 뒤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시에 따르면 건교위 소속 국회의원 7명은 이날 오후 7시 반경 국감이 끝난 뒤 인천시청 앞 A참치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서는 인천시장과 부시장, 기획관리실장 등 시 간부들이 의원들을 접대했다.
의원 보좌관 등 수행원들도 이 참치집 옆방에서 식사했으며 전체 식사비는 270만 원 정도가 나왔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 비용은 총무과 직원의 신용카드로 계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천시장이 26일 해외 출장을 떠나는 점을 고려해 2차 술자리는 갖지 않았다.
▽농림해양수산위=역시 25일에 농림해양수산위 의원 3명은 제주도와 KRA(한국마사회)에 대한 국감을 하기 전날 저녁 횟집에서 식사 접대를 받았다. 이들은 총 47만5000원가량어치의 술과 음식을 먹었으며 비용은 KRA 측이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뒤인 26일 낮에는 의원 9명을 포함해 23명이 모두 78만 원어치의 식사를 했고 이날 비용은 제주도가 부담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의원 8명을 포함해 보좌관, 피감기관 관계자 등 60여 명이 320만 원어치의 식사를 했으며 KRA가 식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제주도와 KRA가 이틀간 국회의원 등의 식비로 쓴 돈만 총 400만 원이 넘었다.
▽싸늘한 여론에도 “당연한 관행” 주장=이런 국회의원과 피감기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주부 박은정(37·서울 강남구 도곡동) 씨는 “정부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한데 어울려 피감기관 사람들과 술판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세금이 잘 쓰이는지 감시할 사람들이 ‘혈세’로 먹고 마신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관계자들은 여전히 ‘당연한 일’ ‘관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피감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의원과 보좌관 등만 수십 명인데 수백만 원의 식사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제주도 관계자는 “태풍 ‘나리’로 인한 피해 복구 예산 반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노력을 해 줘야 한다”며 “식사 등 각종 비용을 도에서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편집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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