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김 총리가 ‘기술형 관료’라는 점이다. 그는 방문단을 이끌고 베트남에 도착해 광산과 물류 중심지, 채소 연구소를 둘러보고 베트남 관료들과 경제개방 및 발전 방안에 대해 장시간 토론했다. 또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에서도 산업현장을 누비면서 배우는 데 주력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올해 초 선언한 ‘전방위 외교’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2·13합의’ 과정에서 융통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3월과 6월엔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각각 상대국을 방문했다.
7월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몽골 등 아시아·아프리카 5국을 방문했다. 9월엔 과테말라 등 5개국과 수교했고 10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하기 위해 경제 학습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노동신문은 ‘경제 강국을 위해 분투하자’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조선은 어떤 형식의 개혁개방도 거부한다”고 명백히 밝혔다.
북한이 세계를 껴안는다거나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은 현실과 맞지 않는 셈이다. 이런 착오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對北) 제재를 결의했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북한은 수십 년간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서 치르게 되는 어떤 대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절대로 전술적 선택이 아니다. 핵 보유 뒤 이를 이용해 동북아 국제관계를 새로 정립하겠다는 게 북한의 전략이다.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 뒤 “북한은 정정당당히 핵을 보유한 국가”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결의하자 북한은 3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우선 안보리 결의를 활용한 미국의 무력 공격을 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안보리 결의 자체를 휴지 조각으로 돌리는 것, 셋째는 핵 보유 상태에서 미국과 수교해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승인을 받는 것이다.
미국의 무력 제재 가능성은 당초 한국과 중국이 반대한 데다 ‘2·13합의’로 사실상 사라졌다. 둘째 과제는 남북경협 강화와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셋째 과제는 북한이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다.
북한의 핵실험 후 미국의 강조점은 ‘핵무기 절대 불용’에서 ‘핵 확산 절대 불용’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북한이 이미 제작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북한은 이를 포착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여 주는 융통성은 이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최근 활발한 외교활동 역시 핵 보유 전략의 일환이다. 경제협력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실제로는 유엔 제재를 피하고 나아가 핵보유국으로 승인받기 위한 북한의 장기 전략에서 출발한 것이다.
장롄구이(張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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