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은 지난 5년 내내 ‘정책 정당’을 표방하며 이번 대선에서 ‘정책 경쟁’을 하겠다고 다짐해 왔으나 정작 원내 제1당인 대통합민주신당과 제2당인 한나라당조차 아직 대선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도 대선 공약집을 발표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9일 대통합민주신당 등 국고보조금을 받는 6개 정당 대표들과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을 하고 정책 위주의 선거 풍토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으나 각 당이 공약을 발표하지 않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유권자들은 공약에 대한 검증은커녕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5년간 국정을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오리무중 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급조한 대통합민주신당뿐 아니라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 범여권 후보들은 후보 단일화나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도 대북정책 등은 현 정부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구상인 데 반해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정 후보를 현 정부 실정의 공동책임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다고 해도 대학 입시제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등 주요 공약이나 정책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범여 후보들이 조율된 공약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하고 선언했던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추진 중이지만 언제 공약을 내놓을지 불투명하다. 이 전 총재 측 이흥주 특보는 “공약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면서 “두 번의 대선 때 내세웠던 공약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리모델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는 체계적인 공약을 내놓지 않은 채 이 전 총재에게 ‘중도보수 연합’을 명분으로 연대를 제의했다.
김병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영남권 일부 유림이나 목회자 승려들의 출마 촉구 선언을 내세우며 출마설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한 정치학자는 “앞으로 10년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시기”라며 “그런데도 후보들이 국정 비전 제시보다는 네거티브 공방이나 판짜기 싸움에 치중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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