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부시 후보가 택한 전략은 ‘매케인보다 더 보수적으로 보이기’였다.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의 표를 모으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보로 선출된 뒤 부시의 전략은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른 종류의 공화당원(a different kind of Republican)’으로 행동하기였다. 부시 후보는 특히 교육 분야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을 탈피해 교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연방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사실 일찍이 양당제가 자리 잡은 미국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당 지지층의 정서에 어필하기 경쟁이 치열하지만 본선에서는 온건중도 유권자 혹은 ‘중도적 다수’에 부응할 수 있는 노선으로 한두 클릭씩 이동하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다.
하지만 올 한국 대선은 그 같은 상식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지난달 15일 후보 선출 이후 자신의 브랜드로 삼았던 중도실용주의 노선이 무색하리만치 ‘가치 논쟁’을 내세우며 ‘차별 없는 사회’ ‘20% 대 80%’ 등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각을 세워 ‘집토끼’(전통적인 범여권 지지층)를 묶어세우겠다는 전략이라지만 당내에서조차 공허하고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구호로 오히려 지지율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이 후보는 ‘국가정체성 회복’을 대선 출마 명분으로 내세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의식한 듯 ‘보수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이 후보는 재향군인회 초청 안보강연회(8일) 때는 이 전 총재가 비판했던 ‘한반도 평화비전’이 자신의 대북 정책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평화비전은 ‘꼴통 보수’ 딱지를 떼기 위해 당에서 마련했으나 논란이 일어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한 것이긴 하다.
적절한 이념 경쟁은 정책 경쟁으로 가는 매개 역할을 한다는 옹호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가 1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60.1%는 차기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로 ‘경제성장’을 꼽았다.
이 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유지해 온 것도, 정 후보가 단일화된 친노(親盧·친노무현) 진영을 물리치고 경선에서 후보로 뽑힌 것도 당내의 좌우 이데올로그들과 달리 먹고사는 문제에 상대적으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덕분이었다.
만일 두 후보가 불안정한 현 구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편리하지만 낡은’ 좌우의 ‘이념 장사’에 의존하려 든다면 실망한 다수 유권자들은 ‘파쇼적’이거나 ‘포퓰리스트적’인 비이성적 선동에 흔들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양대 정당 후보들이 옛 시절 ‘집토끼’만을 상정하고 양 극단으로 내달을 경우 안 그래도 지난 10년간 갈라지고 벌어진 갈등을 대선 이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중도실용 노선을 바탕으로 집권 2년 만에 이념적 방황에 찌들었던 ‘늙은 경제’를 회생시키고 있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같은 용기가 한국에서도 필요한 시점이다.
박성원 정치부 차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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