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표는 8월 20일 경선 승복 연설에서도 이 후보에게 “정권 교체에 반드시 성공해 주길 바란다”고 했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조건도, 요구도 없이 저를 도와주신 순수한 마음으로 당의 정권 창출을 위해 힘을 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 그가 이회창 씨의 기습 출마로 요동치는 대선 국면에서 경선 승복 발언을 거듭 확인한 것은 사실상 이 후보의 손을 들어 준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이로써 대선 구도가 훨씬 명료해졌다.
경선에 참가했던 당사자로서 박 전 대표가 당의 공식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일 것이나 이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굉장히 실망이 많다” “무서운 정치다” “원칙이 무너지고 과거로 회귀한다”는 그의 말 속에 이런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으로 경선 승복 약속을 지켜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신을 도왔지만 경선 패배로 당의 중심에서 밀려난 측근과 지지자들을 못 본 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이날 ‘원칙과 정도 정치’를 새삼 강조한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회창 씨도 정도를 지키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박 전 대표와 언제든 뜻이 통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연대 가능성을 암시했고, 이후에도 그런 뉘앙스의 발언을 했지만 박 전 대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제 방황과 갈등은 접고 오직 유권자만을 직시해야 한다. 배신과 음모의 구태(舊態) 정치와 절연하고 원칙을 바로 세워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른 정치란 무엇이고, 정당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도 대선 승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가 손을 잡고 함께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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