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희원]“국정원의 월권을 부추기지 말라”

  • 입력 2007년 11월 19일 03시 02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 여러 사례 중 걱정되는 것은 실질적인 국가 공조직 운영에서의 문제다. 특히 국가정보기구의 운영에 대한 시각과 실제 운용이 그렇다.

대통령은 국가 중앙정보기구의 신임 책임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 부패방지 및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청렴위원회의 유관회의체에 국가정보기구를 포함시켰다는 사실도 보도됐다. 아프카니스탄 인질사건과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국가정보기구 최고 책임자의 맹활약이 있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법집행기구와 정보기구의 역할과 임무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부정부패 척결과 사회 치안 유지는 본질적으로 경찰, 검찰 등 법집행기구의 임무이지 국가정보기구의 임무는 아니다. 정보는 정책을 보좌하고 지원해 정책을 통하여 빛을 발하는 후방 지원적인 조력자이다. 미국의 대표적 정보학자 마크 로웬탈은 “정보와 정책의 영역 사이에는 ‘반투성(半透性)의 막’이 있어 정책은 언제든지 정보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지만, 정보는 정책에 조언하고 생산된 정보를 제공할 뿐 반투성의 막을 넘어 정책에 영향을 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가정보기구가 국가 정책 집행의 전면에 서는 것은 국가 운용의 틀을 깨뜨리는 일이다. 다만 국가정보기구가 예외적으로 정책 집행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해외에서의 ‘비밀공작(Covert action)’의 경우 단 한 가지다.

그것도 법치행정의 원칙상 법에 권한이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한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한 1947년의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 of 1947)에는 오늘날 CIA의 임무로 인정되는 ‘비밀공작’에 대해 명백한 규정은 없었다. 다만 법 제102조 5항에는 ‘CIA는…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기타 기능(such other function)과 의무를 수행…한다’라는 소위 ‘기타 조항’이 있어 국가안보 관련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법이 개정돼 명백하게 비밀공작이 CIA의 임무로 인정되기까지는 치열한 법리논쟁을 거쳤다. 의회는 “기타 조항은 소위 허점 조항”으로 국가정보기구의 임무를 무한히 넓혀 주는 방향으로 기능하여서는 안 된다며, CIA의 비밀공작 권한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CIA 초대국장인 로스코 힐렌코에터는 비밀공작에 관심이 없으며 CIA가 순수한 정보조직으로 기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법에는 비밀공작 조항이나 ‘기타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에서, 그리고 남북 정상의 남북합의서 작성 시에도, 정책 주무 부서를 제치고 정보기구 수장이 공개적으로 등장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국정운영의 모습이 연출됐다. 국가 중앙정보기구인 국가정보원의 이러한 변칙적인 운용의 모습은 우리 국가운영체계가 얼마나 미숙한지를 입증한다.

한희원 동국대 법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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