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BBK 주식 보유’ 한글 이면계약서 진위 논란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4분


김씨측 “이명박 이름 - 인감도장 찍혀있는 진본”

한나라 “도장 글자 획모양 등 눈으로 봐도 달라”

‘BBK 사건’에 대해 김경준 씨 측과 한나라당은 각각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며 막판 결전을 벌이고 있다.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씨는 23일 한 언론을 통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BBK 주식을 보유했다는 내용이 담긴 ‘한글 이면계약서’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서류를 공개했다. 한나라당은 즉각 “계약서에 찍힌 인감도장은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닌 위조된 것”이라며 ‘인감신고서 및 인감증명서’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 한글 계약서에 찍힌 인감도장 진위 공방

에리카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BBK 주식 61만 주를 50억 원에 김 씨에게 넘기는 내용이 담긴 한글 이면계약서를 공개했다. 이 계약서는 ‘주식매매 계약서’라는 제목의 A4 용지 2쪽 분량이다.

김 씨 측은 이 계약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 후보의 이름과 함께 인감도장이 찍혀 있다는 이유로 진본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 반격했다. 이 계약서에 찍힌 이 후보의 인감도장은 이 후보의 것이 아니라며 ‘인감증명서’를 공개했다. 도장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두 개의 도장을 비교해 보면 ‘명(明)’자 중 ‘월(月)’자 하단 휘어짐이 다르고 ‘박(博)’자 좌변 역시 가로 획 위치가 다르다. 육안으로 봐도 동일한 도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인감증명서뿐 아니라 이 인감도장이 사용된 ‘LKe뱅크 이사회 의사록’ ‘풋옵션 계약서’ 등도 함께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 계약서 체결 시점에 다른 인감도장 사용

에리카 씨가 공개한 한글 계약서는 2000년 2월 21일 체결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후보가 계약서에 나오는 인감도장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 후보의 ‘인감신고서’를 공개했다. 인감신고서에 따르면 이 후보는 인감을 분실해 2000년 4월 24일 새로운 인감을 해당 관청에 신고했다.

그런데 에리카 씨가 제시한 2000년 2월 21일 체결된 한글 계약서에는 새 인감도장과 비슷한 도장이 찍혀 있다. 한글 계약서에 날인된 인감도장이 설령 위조된 게 아니라 해도 인감으로 신고도 안 된 도장을 계약서에 찍은 꼴이다.

홍 위원장은 “김 씨 측이 계약서를 임의로 만들면서 이 후보의 인감이 중간에 바뀐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바뀐 도장 모양만을 보고 급조해 만든 것임이 명백히 드러났고”고 말했다.

김 씨 측은 이 같은 한나라당의 반박에 대해 현재까지 별다른 재반박을 하지 않고 있다.


▲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 서명 빠지고 맞춤법 틀린 계약서?

한글 계약서에는 이 후보의 서명이 빠져 있다. 도장만 날인돼 있을 뿐이다. 홍 위원장은 “비슷한 시기에 5억 원짜리 계약을 하면서도 이 후보는 서명과 날인을 모두 했는데 50억 원의 큰돈 거래에서 서명을 안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계약서 내용의 맞춤법도 상당 부분 틀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 위원장은 “전해들은 바로는 계약서가 맞춤법도 틀리고 조악하다고 한다”면서 “맞춤법이 곳곳에서 틀렸다는 얘기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 김종률 의원은 ‘김경준이 미국인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맞춤법에 서툰 김경준이 이 문서를 직접 만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계약서 내용도 사실과 달라?

한글 계약서에 따르면 이 후보가 BBK 주식 60만 주를 50억 원에 김 씨에게 넘기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김 씨가 남대문세무서에 신고한 ‘주식 등 변동 상황 명세서’ 사본을 제시하며 “2000년 5월 9일 이전까지 e캐피탈이 BBK 전체 주식의 98.36%인 60만 주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반박했다. BBK 주식은 제3자 소유였기 때문에 이 후보가 이 주식을 파는 게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 공세 전환 이 후보 측 vs 잠잠한 김 씨 측

이 후보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나 자신이 주가 조작이나 BBK를 소유했을 것이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 검찰이 조사가 끝나는 대로 밝혀 주길 요청한다”며 “검찰이 (대선 후보) 등록할 때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 안 하면 기소할 때라도 발표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나경원 대변인은 “오늘로 이면계약서 주장이 명백한 거짓말임이 입증됐다. 김경준 일가가 벌이고 있는 사기 행각의 마각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공세에 대해 김 씨 측은 일단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한글판 이면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다른 서류에도 사용됐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봉주 의원은 “2000년 6월 14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된 e뱅크증권중개 예비설립허가 신청서 첨부 서류에 찍혀 있는 도장이 이면계약서에 있는 이 후보 도장과 같다”고 주장했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 일부에서는 문서 필적 감정 등의 이유로 후보 등록 전에 수사 결과 발표가 어렵다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문서, 필적 감정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지만 기다리라는 말이냐”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 진위 감정 어떻게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41·수감) 씨 측이 23일 ‘사실상 이 후보가 BBK의 주인’이라는 내용의 ‘이면계약서’를 검찰에 제출함에 따라 이 문서의 진위 판정이 검찰 수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서의 진위 및 계약 성립 여부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서에 찍힌 이 후보의 인감도장이 실제 이 후보의 인감도장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장의 진위를 가리는 인영(印影) 감정을 위해선 비교 대상이 되는 원본 도장이 찍힌 문서를 우선 입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우선 이 후보 측에 이 후보의 인감도장 또는 이 도장이 사용된 문서를 요청하고 해당 주소지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인감대장을 제출받을 계획이다. 수사팀은 이를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겨 위조 여부를 감정한다.

그 후 감정 대상 문서에 찍힌 도장과 인감증명서 등의 원본 도장을 확대투영기나 입체현미경으로 화면에 띄워 △인영 조각과 다듬어진 부분의 특징 △인영의 간격과 각도 등을 정밀 검증한다.

도장의 재질이나 도장이 찍힌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도장 감정이 필적 감정보다 정확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감정 기간은 통상 대검 문서감정실이나 국과수에 맡기면 1, 2주 걸린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우선적으로 배정해 신속하게 분석하면 감정 결과가 더 일찍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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