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외쳤지만=대선 승리를 위한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는 지난해 열린우리당에서부터 계속돼 왔다. 김한길 의원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은 2월 6일 “반드시 통합을 이뤄 내겠다”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5월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잠시 ‘중도통합민주당’이 생겨났으나, 8월 열린우리당 후속 탈당 그룹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할 때 쪼개졌다. 이후 열린우리당과 합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은 다시 민주당과 통합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지분 문제를 둘러싼 양당 간 이견과 당내 계파들의 반발로 대선 후보 등록 전 ‘통합’은 물 건너가게 됐다.
이에 따라 2002년 대선 당시 대선 후보 등록일을 이틀 앞두고 극적으로 이뤘던 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후보단일화의 ‘감동’을 재현한다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계획도 틀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2002년의 대선 승리 드라마를 범여권이 재현하려다 또 망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실제 범여권의 올해 정치 행보는 2002년 민주당이 벌였던 대형 정치 이벤트를 답습하는 양상을 보였다.
▽‘어게인 2002’ 외쳤지만=2002년 2∼4월 7만 명이 참여한 민주당의 이른바 ‘국민참여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대세론’을 내세우며 독주하던 이인제 후보를 극적으로 이기고 대선 후보에 선출되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올해 8∼10월 150만 명이 참여한 대통합민주신당의 국민경선은 바람을 일으키기는커녕 선거인단 수 불리기에 급급하다가 결국 ‘유령 선거인단’ 동원, 노 대통령 명의 도용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정동영 후보에게 ‘구태’ 이미지만 덧씌웠다. 당은 당대로 예비경선 순위 집계 오류, 경선 파행 등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되고 ‘무능 분열 세력’이라는 오명(汚名)을 얻었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노 후보는 한 달 사이에 지지율이 3∼4배 상승했으나, 정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지지율이 20%를 잠시 넘었다가 다시 10%대로 내려앉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논의도 합당 선언과 파기 등 우여곡절 배경이 두 당 사이의 지분 다툼 때문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두 당에서는 “통합을 해도 유권자들이 별로 감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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