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재판받은 사안 포함 부적절
檢 1차수사 없이 도입 ‘속도위반’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삼성 비자금 특검법’을 수용하면서 “특검법이 법리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굉장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부권 행사를 검토했던 이유로 “국회에서 처음에 거론되고 있는 특검의 논의가 하도 좀 무리해서, 말하자면 보충성도 없고 특정성도 부족해서 대단히 포괄적이고 근거도 희박한 것을 그냥 둘둘 말아서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특검의 수사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검찰 제도의 보충적 성격’이라는 특검 제도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특검 도입에 반대하면서 내세운 논리와 맥이 닿는다.
정 장관은 특검법안이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 및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고 △특별검사제도의 예외적 보충적 성격에 반하며 △헌법상 차별금지의 원칙에 위배됨으로써 사건 관계인에 대한 평등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은 2003∼2004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수사해 이미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된 확정 사건이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이를 다시 수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검찰 중견 간부는 “한번 재판을 받은 사안에 대해서는 다시 심리 및 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는데 특검이 또 수사해서 기소하면 비슷한 사안으로 두 번 재판을 받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위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된 것은 부적절하다”며 “수사대상에 대한 정의도 더 명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특검법은 지극히 예외적 보충적으로만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수사대상이 너무 광범위해 과연 제대로 실체 규명이 이뤄지겠느냐는 반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 명시된 수사대상은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있어서의 불법행위 의혹과 수사 방치 의혹을 받고 있는 4건의 고소 고발 사건 △삼성그룹의 불법로비와 관련하여 불법비자금을 조성한 경위와 그 비자금이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 등 금품 제공 의혹 사건으로 정해져 있다.
이처럼 광범위한 수사대상은 역대 6번의 특검이 수사대상을 한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검은 그동안 △정부가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의 파업을 유도했는지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에 비밀 송금이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수사 대상을 명시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특검은 모두 검찰이 1차 수사를 한 뒤 미흡한 점이 발견됐을 때에만 실시된 것에 반해 이번 특검은 사실상 검찰 수사 없이 바로 도입된 것도 비정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떡값 검사’ 의혹이 제기된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지만 기본적으로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해본 뒤 도저히 결과를 믿을 수 없을 때 한정적으로 도입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특검은 수사대상이 특정돼야 하는데 이번엔 수사대상이 상당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며 “사기업에 대해서 이번처럼 직무범위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로 특검이 수사하고 기소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남아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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