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철희]거리 좁히는 中-日, 제자리 걷는 韓-日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꽁꽁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는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11월 28일 중국 해군의 미사일 구축함 ‘선전(深(수,천))’호가 일본에 처음 입항한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 구축함 일본 첫 입항

중국 군함이 일본에 입항한 것은 국민당 시절인 1934년 이래 73년 만이며, 중국이 출범하고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중-일 함정의 상호 방문은 2000년 10월 당시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이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합의 후 7년이 지난 올해 실현된 것이다.

‘아시아 전략의 부재’를 숨김없이 드러냈던 고이즈미 총리 시절 일본과 중국, 일본과 한국 사이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중국과 일본은 6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았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06년 10월 8, 9일 베이징과 서울을 방문하면서 아시아 외교를 출발점까지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중국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4월 일본에 보냈다. 원자바오는 방일 기간 일본 국민을 향한 ‘미소 외교’로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등장은 일본의 아시아 외교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일동맹 일변도이던 고이즈미와는 달리 후쿠다 총리는 자신이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밝혔다. 후쿠다 총리의 아시아 중시 노선이 중-일관계의 다방면에 걸친 호혜적 협력 진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11월 23일에는 중-일 여당교류협의회가 개최됐고, 12월 1일엔 고위급 경제전략회의가 열린다. 연말이나 내년 초 후쿠다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고 내년 4, 5월경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이 예상된다.

이 같은 중-일관계의 개선은 일본 지도자의 교체에 따른 외교 노선의 전환과 양국의 정치적 안정에 기인한다. 중국과 한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아베 총리에 이어, 아시아주의자인 후쿠다 총리가 등장해 일본의 아시아 회귀에 대한 기대를 높여 주고 있다. 중국도 제17차 공산당대회 이후 지도부가 안정을 찾아 가면서 중-일관계 개선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에 반해 한일관계는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답보 상태다. 한국의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할 내년 2월 25일까지 정상외교는 ‘휴면기’를 맞이할 것이다. 결국 본격적인 한일 정상 간 관계 회복과 새로운 전기의 마련은 내년 3월 이후에나 가능하다.

능동형 외교 협력시대 기대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만남이 어려울 경우 ‘특사’를 파견해 새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직후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는 일본 총리와 ‘특사 교환’ 등을 통해 한일 협력의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일 양국이 갈등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벌여 온 ‘균형자 외교’나 ‘가교 역할의 수행’이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털어 내고,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브로드밴드식’으로 접착시키는 주도적 연계 국가가 돼야 한다.

중국이 그랬듯 과거 중심적, 과거 회귀형 외교를 당분간 접어 둘 필요가 있다. 중-일관계의 개선이 한국 외교에도 도움이 된다는 자신감을 갖고 동아시아 협력주의를 선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능동형(proactive)’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일관계를 대폭 개선하는 동시에 아시아시대의 새 지평을 여는 지도자의 등장을 기대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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