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검찰총장 말대로 하면 된다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겠다.”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달 26일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진실의 칼 하나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전임 정상명 검찰총장의 퇴임사에 대한 화답(和答)처럼 들린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 뽑히는 것은 역설적으로 2007년 12월 대한민국 검찰이 오른 시험대의 무게를 시사한다. 대선이 검찰의 손에 쥐여진 것은 비정상적이다. 그러나 피해 갈 수도 없고, 피해 가려 해서도 안 된다. 전임 총장의 말 그대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정치권은 나서지 말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는 이미 “BBK 주식은 한 주도 가진 적이 없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BBK와 관련돼 문제가 있다면 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비록 선거법 위반 및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지도자의 도덕성 측면에서 하자가 있었다고 해도 주가조작이란 범죄에까지 개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에 하나 그가 주가조작에 관련된 혐의가 있다면, 그것이 명백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라면, 그는 마땅히 자신의 말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큰 혼란이 빚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해 내야만 한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의혹의 수준이라면 임 총장이 말한 대로 엄격한 증거법칙과 정확한 법리 판단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없는 건 없다’고 해야 한다. 만약 지난번처럼 ‘…으로 보인다’는 식의 무책임한 소리를 되풀이한다면 검찰은 자폭(自爆)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검찰은 ‘정권 보위(保衛)의 첨병(尖兵)’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는 ‘경제 권력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임 총장과 같은 날 취임한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은 국민을 섬기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그것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정치권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검찰이 뭐라고 하든지 유불리에 따라 아예 믿지 않을 작정이라면 그들은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안중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판단과 선택은 유권자인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여야가 콩 놔라, 팥 놔라 하며 나설 일이 아니다.

이번 대선을 맞는 민심의 향방은 ‘바꿔 보자’는 것이다.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은 성난 얼굴로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줄곧 성난 얼굴로 과거를 돌아보며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국민 통합은커녕 분열시켰다. 그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 점에서 1년 넘게 지지율 1위를 고수(固守)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최대 후원자는 노 정권이라는 아이러니가 성립된다. 여당 사람들로서야 도덕성 문제에 BBK 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이상한 나라’에 ‘노망든 국민’처럼 야속하겠지만, 정말 야속해할 쪽은 지난 대선에서 노 정권에 표를 준 사람들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고 패를 나눌 일이 아니다. 이념적 성향과는 무관한 서민, 자영업자, 청년 백수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대선 구도가 보수 우파의 절대 우위로 고착된 것도 진보 좌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니던가.

찜찜한 채로 투표하긴 싫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대선에 대한 관심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노 정권을 심판하자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다며 찜찜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명박 피로증’이다. 경제를 살릴 적임자는 이명박이고, 그래서 웬만한 흠에는 그러려니 눈감고 가려고 하지만 뭐가 이렇게 자꾸 터지고, BBK LKe뱅크는 또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슬슬 짜증이 난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은 개운한 기분으로 다음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뽑힌 대통령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신뢰를 얻어야 경제도 살릴 수 있다. 가부(可否)간에 유권자의 마음을 개운하게 해 줘야 할 의무가 ‘임채진 검찰’에 주어진 것이다. 그 답은 역시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에 있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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