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재수사 할 계획 전혀 없다”
대선을 3일 앞둔 16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BBK 설립’ 관련 육성 동영상 CD가 공개되면서 대선 정국이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이 후보가 2000년 10월 광운대 최고경영자과정 강연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BBK 관련 의혹을 검찰이 재수사하도록 지휘권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의 재수사를 위한 지휘권 발동 검토를 공식 지시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정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상황 보고를 받은 뒤 “검찰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국민의 의혹 해소와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 재수사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이날 밤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BBK 관련)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여권은 사기범(김경준 씨)에 매달리더니 이제는 (동영상을 대통합민주신당에 제공한) 공갈범에 의존하여 선거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오늘 오후 청와대도 여기에 가세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특검이 두려워서 반대해 온 것은 결코 아니다. 정략적 특검이라 반대했다. BBK와 관련해 한 점의 부끄럼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은 노 대통령의 지휘권 발동 재검토 지시에 앞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의 동영상 내용을 확인해 봤더니 수사 당시 참고했던 여러 인터뷰 등과 별 차이가 없어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재수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李 “새로운 공작… 盧 중립을”
정동영-이회창 “후보 사퇴하라”▼
대통합민주신당 공동선대위원장단은 16일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후보가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과정 강연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말했다”며 동영상을 공개하고 이명박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동영상에는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다. 1월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 증권사를 설립하기로 생각해 정부에 제출하고 며칠 전 예비허가가 나왔다”는 발언이 담겨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는 이날 저녁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TV합동토론회에서 “이 후보는 신용파탄자 거짓말쟁이임이 드러났다. 국민을 속이는 사람은 나라를 이끌 수 없다”고 공격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이명박 후보는 BBK와 아무 상관없다고 강조해 왔는데, 자기가 설립한 BBK 회사의 이익이 올랐다고 하는 것을 보니 검찰 수사가 엉터리임이 드러났다”며 이 후보의 대국민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는 “많은 네거티브 음해공작에 시달려 왔는데, 투표 3일을 앞두고 새로운 공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반박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공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동영상 발언은 이 후보가 김경준과 공동 설립한 LKe뱅크와 협업 관계에 있는 BBK를 홍보해 주기 위해 한 말”이라며 “공갈 협박범과 공조해 대선정국을 어지럽히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반격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이날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대선 후보 5자 회동을 통해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동영상’ 미끼 거액 요구 3명
한나라 신고로 현장서 체포▼
서울 마포경찰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대학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밝히는 강의 동영상을 미끼로 거액을 뜯으려고 한 K미디어 대표 여모(42) 씨 등 3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여 씨 등은 15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S호텔에서 한나라당 관계자를 만나 30억 원을 뜯어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한나라당의 신고를 받고 여 씨 등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으며 이들이 갖고 있던 CD 2장도 압수했다.
여 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 “이 후보가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에서 2시간 동안 강연한 내용을 녹화한 테이프를 갖고 있었다”며 “녹화 내용 가운데 이 후보가 ‘금년 1월 BBK를 설립했다’는 발언을 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K미디어는 2000년 당시 광운대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여 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거래를 거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주 목적은 사업상 도움을 얻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유력 대선 후보 측을 잇달아 만나는 등 배후와 공범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휴대전화 통화기록 추적을 통해 이들의 행적을 밝힐 계획이다.
여 씨 등의 변호인은 “여 씨와 공모자 김모(54) 씨가 서로 주범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이 관여하거나 배후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을 조사한 뒤 17일 오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촬영 : 이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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