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민웅]국민의 무서운 힘 보여 주자

  • 입력 2007년 12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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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국민이 무섭다’는 말이 실감나는 선거다. ‘백년 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호기롭게 출범한 노무현 정권의 ‘열린우리당’이 불과 3년 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국민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여권이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어지럽게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결국 간판만 바꾼 채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간 것도 어떻게 하든 국민의 마음을 얻어 보자는 처절한 버둥댐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각종 의혹과 관련해 실로 집요한 네거티브 공세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지지 덕분이다. 이 모두가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국민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무서운 힘의 증거다.

투표 행태도 달라질 징후가 뚜렷하다. 이전 선거에서 맹위를 떨쳤던 이념, 세대,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합리적 선택 모형’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 상품을 잘못 선택하면 선택한 개인에게 영향을 주지만, 정치 상품을 잘못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경제 상품 선택보다 정치 상품 선택이 더 중요하다. 경제 상품은 맘에 들지 않으면 무를 수 있고, 고장 나면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정치 상품은 한 번 잘못 선택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시장에서 상품을 고를 때보다 좀 더 신중하고 냉정해야 하는 까닭이다.

후보 선택, 신중하고 냉정하게

그렇다면 누굴 찍을 것인가? 합리적 선택 모형이 제시하는 투표 행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 실적에 대한 상벌주기식 과거 지향(retrospective) 투표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미래 지향(prospective) 투표다. 그러나 실정(失政)을 심판하는 벌주기식 투표는 곧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 투표로 연결되고, 사실상 두 투표 행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현재 남아 있는 후보는 10명으로 역대 대선 중 가장 많다. 그런데도 딱히 맘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들 한다. 지독한 네거티브 공방이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않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次善)을, 그것도 힘들면 최악을 피해 차악(次惡)을 고르면 된다. 어떤 기준으로 고를 것인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두 가지 기준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지난 5년 동안 내 형편이 나아졌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누굴 찍는 게 다음 5년 동안 내 형편이 더 나아질 것인가?’이다. 여기에 굳이 하나만 덧붙인다면 누가 그동안 편 가르기로 심하게 망가진 나라의 활력을 되찾아 조국을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하는 데 필요한 실천적 리더십을 갖추었느냐일 것이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투표율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꼭 투표하겠다는 유권자의 비율이 역대 대선 중 가장 낮다. 투표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비록 ‘떠버리 무능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 정서가 널리 그리고 강하게 퍼져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극성을 부린 네거티브 캠페인이 정책선거를 실종시켜 선거의 진정한 의미를 많이 훼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유권자의 주권 의식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채질하여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1, 2위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너무 커서 한 표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선거 결과는 뻔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투표장에 가는 것을 귀찮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막판에 터진 ‘이명박 동영상’도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예측이 더 많다.

기권, 나라의 주인 포기하는 것

그래도 기권은 안 된다. 분명히 기억하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기권은 나라의 주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노예 되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이고, 근사치이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hard fact)이고, 앞으로 정국 운영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투표장에 가서 우리의 무서운 힘을 보여 주자. 그래서 활기찬 새 역사를 만드는 데 동참하자.

이민웅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언론학 minw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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