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파티는 끝났다

  • 입력 2007년 12월 25일 03시 09분


‘불임(不姙)의 시대’에 대한 심판은 매서웠다. 민생을 힘들게 하면서 세금 부담은 늘린 정권, 취업난을 가중시키고 기업을 주눅 들게 한 정권에 대해 국민은 퇴장 카드를 내밀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서 범여권의 참패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는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끌어 낸 핵심 변수였다.

경제가 정치적 격변을 불러온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외환위기는 선거를 통한 첫 여야 간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 몰락도 장기집권의 후유증과 함께 부가가치세 도입과 경기침체에 따른 민심 이반이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 대통령’을 내걸었다. 청계천 복원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이를 뒷받침했다.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밀어붙인 ‘청개구리 권력’에 질려 있던 국민 사이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도덕성 논란과 정권 안팎에 포진한 좌파 및 기회주의적 신(新)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공격도 이를 돌려놓진 못했다.

이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선거 결과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대선의 특성상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번에는 선거를 통한 두 번째 여야 간 정권교체와, 폐해가 위험수위로 치달은 얼치기 좌파정부의 민주적 절차를 통한 종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이제 승리의 기쁨을 접고 차가운 머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한국의 경제 현실을 직시한다면 차기 대통령이 축하 파티장에 더 머물러 있을 여유는 없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외 여건에 힘입은 바 컸다. 현 정부의 임기는 세계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던 시기와 대부분 맞물려 있었다. 그런 좋은 기회를 허송세월한 정부와 지도자를 가졌던 것은 국운(國運)의 한계였지만.

반면 이명박 정부 앞에 놓인 국내외의 객관적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몰고 온 금융시장 불안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 급등은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의 물가 상승) 우려마저 낳는다.

국내에도 지뢰가 적지 않다. 유가, 원화가치, 금리의 동반 상승은 기업 채산성과 가계부담 악화, 물가 및 국제수지 불안을 부채질한다. 각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서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치 판단과 별개로 삼성 비자금 파문 장기화의 경제적 후유증도 걱정거리다.

이명박 정부 출범은 위기감이 높아진 경제에 일단 호재로 꼽힌다. 대선 후 여론조사를 보면 그의 당선에 기대감을 표시하는 의견이 훨씬 우세하다. 하지만 기대감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요인은 중요하지만 구체적 정책이 뒷받침될 때만 지속적 효과를 지닌다.

이 당선자를 비롯한 차기정부 주도세력은 빨리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냉정하게 현실을 점검한 뒤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시장친화적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할 때다. 급격한 변화에 따른 후유증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파티는 끝났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