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측근인 박희태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된 당권·대권 분리 논란이 24일을 기점으로 일단 봉합되는 분위기다. 이 당선자가 이날 오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사용할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현 당헌 당규를 고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 李 당선자 “신문 보고 깜짝 놀라”
이 당선자는 이날 “당헌 당규를 고친다든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신문을 보니까 우리 당이 공천 문제 때문에 뭐 어떻다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을 갖고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박희태 의원의 발언 취지 등이) 조금 와전됐다”며 “인수위원회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국민들이 실망한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자의 신속한 견해 표명은 인수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벌써 내년 총선 공천을 놓고 당내 권력투쟁이 벌어지면 ‘변화’를 기대했던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당헌 개정을 주장했던 이 당선자 측 일각과 이를 ‘공천 학살’의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박근혜 전 대표 측에게 모두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당선자가 이날 강 대표에게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당분간 당은 당헌대로 대표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이전보다 돈을 덜 쓴 선거를 지휘한 강 대표에게 “훈장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배석자를 물리치고 10여 분간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 정무수석이 당-청 간 채널될 듯
이 당선자는 또 강 대표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제 및 당선자(취임 후에는 대통령)와 당 대표 간 주례회동 부활에 사실상 합의하며 당-청 간의 유기적 협력 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대통령 정무수석 부활의 또 다른 정치적 의미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정무수석이 대통령의 당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의 채널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당-정-청 일체화’를 위한 또 다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당헌 개정을 하지 않고도 정무수석을 통해 대통령이 당무에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 정무수석은 통상 대통령수석비서관 중 최선임이었을 정도로 역할과 기능이 막강했고,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임명됐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말을 자제하고 있다.
일단 이 당선자가 당헌 당규 개정은 없다고 못 박은 상황에서 가타부타 토를 달기는 어렵기 때문.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일단 이 당선자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유기적 ‘당-청 관계’를 빌미로 과도한 입김을 행사한다면 가만히 당하기만 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당권·대권 분리 논란은 내년 1월 말 후 본격적인 18대 총선 공천이 시작되면 얼마든지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인 셈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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