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빨라져야 경제 힘 실려
정부는 민간부문에 비해 정책 결정이나 민원 처리 속도가 훨씬 느리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도 늑장 행정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수도권의 어떤 골프장은 건설 허가를 신청한 지 3년 6개월 만에 착공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토지용도 면에서 골프장 건설에 법적으로 별문제가 없는데도 각종 영향평가와 의견 조회 등으로 3년 이상이 소요됐다.
수년 전 태풍 피해가 극심한 때였다. 피해 복구를 조속히 지원하기 위해 1주일에 한 번 하는 국무회의를 기다릴 수 없어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재해대책 예비비를 의결했다. 그 후 수해 현장에 국고지원이 늦다는 문제가 제기돼 조사해 보니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예비비 지출 서류에 대통령 서명을 받기 위해 며칠을 허비했던 것이다. 급하다고 임시 국무회의까지 소집한 행정처리가 그러니 보통의 행정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의 일처리가 늦은 이유는 공직사회에 시간의 기회비용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뇌물을 먹지 않고 규정을 잘 지키고 비용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완공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신중하게 처리한다는 취지를 넘어 시간이란 요소에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은 ‘시간이 돈’이란 개념이 분명하다. 건물 건축의 경우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면 임대료를 빨리 받을 수 있어 늦게 완공하는 경우에 비해 돈을 더 벌 수 있다. 따라서 휴일 수당을 2배로 주면서도 공기를 단축하려고 노력한다. 정부의 인허가 기간이 단축되면 민간투자는 그만큼 활발해진다.
이제부터는 ‘신속한 행정’을 정부혁신의 중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많은 돈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거창한 계획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과 의식만 바꾸면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데 다른 거창한 정책 과제에 가려 그동안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안 되었다.
신속한 행정을 위해서는 첫째, 실제 업무처리 기간을 감안해 민원 처리 기간을 가능한 한 짧게 줄여야 한다. 골프장 인허가에서 서류 검토나 현장 확인에 3년 반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장 확인에 하루면 충분한 일도 공무원의 늑장 행정으로 민원 처리 기간이 1주 또는 1개월이나 걸리는 경우가 많다.
단축 기간만큼 민간투자 늘것
따라서 민원 처리 기간을 전면 검토해 큰 폭으로 줄여야 한다. 공무원으로서는 민원 처리 기간이 줄어들면 일이 늘어나 힘들다고 말할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민원 처리 기간이 줄어든다고 업무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처리할 민원이 많아 일이 항상 밀려 있는 상태라면 인원을 조정하거나 업무 프로세스를 바꿔 신속한 서비스를 하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의 일하는 형편에 국민 보고 맞추라고 하지 말고 국민 요구에 정부가 맞춰야 한다.
둘째, 정책 이견이나 갈등 조정을 신속히 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나 국무총리가 안 되면 대통령이 나서서 정책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해야 기업이 투자할 수 있다. 시간은 돈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부가 쉽게 할 수 있는 개혁부터 시작하자.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롯데그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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