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정부 반면교사 10년]<1>거꾸로 간 국민통합

  • 입력 2007년 12월 28일 02시 57분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자칭 ‘진보 정부’였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 없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오욕의 역사’로 규정하고 한국의 주류(主流) 세력을 ‘청산 대상’으로 몰아붙이며, 무리한 편 가르기와 이념적인 정책실험으로 혼선과 갈등을 초래한 끝에 민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DJ ‘우리끼리’ 盧 ‘편가르기’… 소외된 국민 피멍

두 정부는 대선 승리에 대해 각각 ‘50년 만의 정권 교체’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며 자신감이 확신으로, 결국은 맹신이라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자기만족)으로 치달으며 스스로 표방했던 ‘국민통합’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지적도 많다.

‘이명박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의 그림자와 후유증을 분야별로 점검해 본다.

○ ‘우리끼리’가 부른 새로운 편향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외자 유치와 대외신인도 상승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를 비교적 단기간 내 봉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 상황이 안정국면에 접어들자 점차 ‘과욕(過慾)’을 부렸다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 사례가 1998년 10월 발족된 대통령자문기구인 ‘제2건국위원회’다.

공무원과 정권 주변 인사들을 대거 참여시켜 관변단체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제2건국위’는 이른바 ‘개혁의제 개발’과 ‘의식 개조’를 앞세운 국민운동을 표방했다. 그러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관 주도형 운동 방식을 택했고 ‘주류 교체’를 위한 정치적 음모라는 비판도 받았다.

정치 중립성을 지키며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해야 할 국가정보원에서 1999년 5월 천용택 원장 취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특정 지역 편중 인사 논란이 야기된 것도 지역갈등의 심화로 이어졌다.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낸 국회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시절 호남 출신 인사들의 요직 점유 비율은 35.7%로, 서울 경기와 영남 출신 전체를 합친 수준(35.6%)을 넘어섰다.

정권 핵심부는 입만 열면 ‘과거 50년 동안 잘못됐던 것을 바로잡는 과도기적 과정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편향을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새로운 편향을 야기하는 일들이 많았다.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이 임기 중반 이후 대북 문제를 계기로 틀어진 것도 대북 정책을 ‘햇볕’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묶어 놓고, ‘다른 목소리’는 ‘반(反)민족’ ‘반통일’로 몰아간 정권 핵심부의 독선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스템 정치는 멀어지고, 동교동계 가신 그룹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강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한 언론사들이 주된 타격 대상이 된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도 집요하게 계속됐다. 요컨대 국내 정치에서는 ‘우리끼리’, 대북 문제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노선이 국민 내부의 골을 깊게 했다는 지적을 낳았다.

○ 민심과 멀어진 ‘개혁 코드’ 편 가르기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능력보다는 이념적 ‘코드’를 통해 주류세력 교체를 시도했다. 각종 엘리트 집단에 대한 조롱과 역사에 대한 부정적 공격적 언급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낳았다.

대통령직인수위에 합류한 26명의 인수위원 중 절반을 좌파 성향 학자들로 채우고 실무는 국정운영 경험이 부족한 386 정치인들과 권력 주변의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맡겼다. 초기 청와대 인사도 ‘386 개혁 코드 공유’가 최우선 조건이었다.

2004년 4·15총선 후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만찬에서는 386 초선 의원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국가기관 장악을 일종의 ‘해방구 쟁취’로 보고 점령군 행세를 한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노무현 정부는 방송과 친여 매체들을 이용해 동아 조선 등 중도보수 성향 매체들을 일관되게 ‘적’으로 여기며 공격했다.

집권 초기 사립학교법 제정에 의욕을 보일 때는 사학을 보유한 종교계를 ‘사익(私益)에만 몰두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 원로들의 고언(苦言)도 수구 보수세력의 한마디쯤으로 치부했다.

집권층이 사법부 삼성 서울대 강남 보수언론 등을 ‘5적(敵)’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확산됐다. 집권층의 기존 엘리트 배척 때문에 과거 중도보수적 정책관을 가졌던 인사조차 정부와 국회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무현 코드’에 맞춰 가는 현상도 나타났다. 재정경제부 장관에 이어 교육부총리를 지낸 대통합민주신당 김진표 의원도 그런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가 민생과는 유리된 이상주의와 탁상공론으로 ‘개혁 피로감’을 야기한 것도 결국 편향된 코드인사의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김성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실제로 좌파 정책을 수용한 것은 별로 없을지 몰라도 집권 초기부터 말과 행동에서 지나치게 좌파적 이미지를 풍겼다. 이념과 코드에의 집착으로 성과도 명분도 모두 상실한 정권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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