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군수뇌들 통수권자 비난 초유의 사태 불러
동맹보다 민족을 앞세운 좌파정권 10년은 한미동맹 균열과 안보정책 혼란으로 점철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 보수 진영과 ‘레드 콤플렉스’를 의식해 햇볕정책과 안보를 분리하는 태도를 취했다. 2001년 7월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무단 통과를 묵인했고 2002년 국방백서의 ‘주적’ 개념 삭제를 검토하는 등 대북 안보정책은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2002년 6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으로 서해교전이 터진 뒤에도 대북 ‘퍼주기’는 계속됐다. 당시 한철용 대북감청부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군 수뇌부가 북한의 도발 징후를 무시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대북 핵심 정보통을 지낸 한 인사는 “군심(軍心)이 정권에 등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NLL을 지키다 전사한 장병들을 외면한 채 ‘민족 공조’만 외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직후 ‘자주와 탈미(脫美) 드라이브’를 걸어 최우선 과제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추진했다.
정부 내 ‘동맹파’를 비롯해 국민적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재임 중 10여 차례 ‘자주군대’와 ‘주권의 핵심 요소’로 전시작전권 전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군 통수권자가 전시작전권 전환을 반대하는 역대 국방장관을 비롯한 예비역 군 수뇌들에게 “별 달고 거들먹거린다”고 폄훼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두둔하고 나서면서 남남갈등에다 안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미 간 군사 신뢰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갔다. 정부가 2005년 1월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작계 5029’ 수립의 중단을 지시하면서 불거진 한미 갈등과 같은 해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때 한국이 공동성명에 핵우산 제공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가 미국이 거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민족을 앞세운 탓에 북한의 군사 위협에 대한 평가는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국방부는 2005년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주적 개념을 삭제한 국방백서를 발간하는 한편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핵 위협의 실상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좌파정권의 안보 실정(失政)이 극에 달하자 두 정부에 참여했던 군 수뇌들이 앞장서서 군 통수권자와 정부를 비난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김희상(예비역 중장)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은 “차기 정부는 좌파정권이 저지른 대북안보분야 실책을 수습하고 제자리로 돌려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초래될 경제 안보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차기 정부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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