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협상파 “아직 희망있다”… 장기화땐 파국
북한은 핵 프로그램 신고 마감 시한인 연말을 하루 앞둔 30일까지 핵개발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이미 “북한이 2·13 및 10·3합의 정신에 따라 올해 안에 신고를 완결지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내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국 외교통상부의 실무 관계자는 “직접 만나 본 북한 관리들이 분명히 달라졌다. 이번엔 뭔가 결과가 손에 잡힐 것 같다”며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기대는 외교적 성과에 목 말라온 부시 행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진척 없는 핵 신고=핵 신고는 크게 세 갈래다. 우선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를 초래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북한이 시인해야 한다. 한때 북한의 태도 변화가 감지됐지만 북한은 “애초부터 그런 건 없었다”고 주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북한은 러시아에서 대량 수입한 알루미늄 튜브는 핵개발과 무관한 미사일용이라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제공했다는 원심분리기에 대해서도 북한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이다.
핵무기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양과 보관상태 공개가 둘째 과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50kg 안팎을 추출했다”며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30kg만 인정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29일 “6자회담 10·3합의문에 ‘과학적인(scientific)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문구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북한이 그저 “30kg이라면 그리 알라”고 말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완제품 핵무기 역시 한미일 3국은 신고 대상으로 간주하지만 북한은 “신고 대상조차 아니다”고 맞서고 있다.
2·13 및 10·3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2005년 9·19합의에는 ‘핵무기 및 모든 핵 프로그램’이란 표현을 썼다. 따라서 핵무기라는 표현이 빠진 올해 합의문은 핵무기를 신고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봐야 맞다”고 주장한다.
▽강경파는 부글부글…협상파는 “그래도 희망”=북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최소한 앞으로 추가 핵물질 생산은 못한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워싱턴에선 지지부진한 핵 신고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날짜에 연연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들린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북한이 첫 보고서에 ‘진실’을 다 담을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압박하고 부실한 내용은 재신고받는 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북한에 약속했던 에너지 제공도 중유 15만 t과 일부 철강재에 그친 상태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 주겠다”는 미국의 구두 약속에 대해선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힐 차관보는 11월 미국 내 진보인사 모임에 참석해 “2008년에는 북한 인권문제도 거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강경파와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여온 힐 차관보로서 핵 신고가 지체될 경우 ‘행정부 내 다른 목소리’를 끝내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첫 고비는 2·13합의 1주년을 맞는 내년 2월이 될 공산이 크다. 그때까지 구체적 진척을 못 본다면 6자회담 구도는 더욱 힘겨워질 수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남북 “해주경제특구 내년1월 공동조사”
인수위 “임기말 조급한 후속협상 자제를”▼
남북은 29일 개성에서 끝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서 해주경제특구 건설을 위해 내년 1월 31일경 현지 공동조사를 하고, 내년 상반기 중 2차 회의와 각 분과위원회 회의를 열기로 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은 내년 1월 해주특구 공동조사 때 해주항에 대한 현지조사도 함께하기로 하고 공동조사 이전에 개성에서 남한 조사단의 방북 경로와 인원, 조사방법 등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 접촉을 하기로 했다. 또 해주특구 분과위를 비롯해 공동어로 협력, 한강하구 협력 등 분야별 분과위를 열고 구체적인 사업 착수 시기와 추진계획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북은 핵심 의제였던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 및 운영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장성급 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이 설정되는 데에 따라 (공동어로를) 실시하기로 한다”는 원칙만 다시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30일 “(현 정부가) 임기 말에 어떤 성과를 인식해 조급하게 남북 간 후속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안 된다”며 “차기 정부를 제약하거나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대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정부가 군사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수위는 (대북정책에 있어) 북핵 폐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나갈 것”이라며 “하지만 정책 이행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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