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영혼 없다니… 자존심 짓밟혀” 분통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정부 홍보사이트 ‘국정브리핑’은 4일 홈페이지 톱기사로 오전에는 전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중소기업인 간담회, 저녁부터는 이날 이 당선인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년회 참석 등 이 당선인 동정 기사를 연속해서 올렸다.
국정브리핑 첫 화면 가운데 배치되는 메인 뉴스 24개 중 16개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련 기사였다.
전날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인사회 관련 기사는 이 당선인 간담회 기사 밑에 놓여 있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전체 80분 중 50분을 할애해 이 당선인의 정책을 비판했지만 국정브리핑 기사의 제목은 물론 기사에서도 이 당선인 비판 내용은 빠졌다.
올해 들어 국정브리핑에 노 대통령 관련 기사는 3건인 반면 이 당선인 관련 기사는 15건이었다. 새해 첫날 표정도 노 대통령은 소개하지 않고 이 당선인만 소개했다.
그동안 ‘정권홍보처’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노비어천가’를 부르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홍보처가 관장하는 한국정책방송(KTV) 역시 4일 홈페이지의 첫 뉴스로 ‘대운하를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 메인화면에 노 대통령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현 정권 아래서 국정브리핑은 노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처럼 국정브리핑과 KTV의 태도가 180도 바뀐 데 대해 인수위 관계자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홍보처 측이 3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털어놓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고 말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4일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혼 없는 공무원’ 발언에 대해 “관료는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인데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며 또다시 ‘언론 탓’을 했다. 김 처장은 이 당선인의 홍보처 폐지 및 기자실 복원 방침에 대해서는 “인수위에 계신 분들이 혜안이 있고 실사구시적인 훌륭한 분들이니까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정부부처 공무원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발언이다. 본인은 퇴임 뒤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뿔뿔이 흩어져야 할 홍보처 공무원들은 뭐가 되느냐”며 “졸지에 영혼이 없어진 공무원들의 무너진 자존심은 누가 회복해 주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수위 관계자는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이 ‘정권의 코드’에 맞춰 궤도를 일탈했을 경우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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