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前대표측 “밀실공천 의도 드러낸 월권 발언”
한나라당의 4월 총선 공천 시기를 둘러싼 갈등이 ‘물갈이론’으로 번져 가고 있다.
‘3월 초 일괄 공천’ ‘2월부터 단계적 공천’을 각각 주장하며 대립해 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이 공천 물갈이 폭을 놓고 또다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
이 당선인의 측근으로 총선 실무를 책임지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현역 의원의 공천 탈락률이 35∼40%는 돼야 하며 영남권 물갈이 비율이 수도권보다 높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알려진 게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 “밀실공천 의도” vs “시대 요구”
박 전 대표 측 김무성 최고위원은 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특정 지역과 계파는 공천 심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도 “공천과 관련해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당 지도부의 권한을 초월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가세했다.
박 전 대표 측의 또 다른 관계자도 “공천 권한을 가진 최고위원회와 당헌·당규를 무력화하고, 철저하게 밀실공천을 하려는 증거”라며 ‘이 총장 문책론’을 제기했다.
불씨를 던진 이 총장은 통화에서 “40%를 교체하겠다고 말한 게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영남권 물갈이 얘기도 역대 총선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교체 비율이 높았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당선인 측은 물론 경선 때 중립지대에 있었던 사무처 당직자들까지도 4월 총선에서 물갈이가 대폭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2000년 4·13총선 때 현역 의원 교체율은 31%, 2004년 4·15총선 때는 36.4%에 이르렀다. 특히 2004년 당시 영남권 물갈이 비율은 42.8%로 수도권 26.5%보다 훨씬 높았다.
이 때문에 “10년 야당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이 고생을 했느냐”며 대대적인 물갈이에 불쾌한 감정을 노출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실제론 투명한 공천 과정을 요구하는 압박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대선에서 이겼다고 물갈이를 최소화한다면 민심은 ‘벌써 오만해졌다’고 돌아설 것”이라며 “박 전 대표 측도 이런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공천 과정에 박 전 대표 측 의견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봉합이냐 확전이냐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인의 중국 특사직 제의를 바로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악화일로를 걸어 온 양측의 공천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6일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29일 이 당선인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중국 특사를 제의받고 그 자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안다”며 “외교 문제는 당내 문제나 계파 간 이해득실을 떠나 최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 측은 “박 전 대표가 특사직을 수용한 것을 보면 명분이 있으면 확실히 돕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공천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과 사회적 명분이 제시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고 말해 양측 간 동상이몽(同牀異夢)을 드러냈다.
한편 경선 때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이 6일 출간한 자서전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경선이 끝난 뒤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유 실장님 불만이 많은가 봐요. 딱 한 번만이라도, 딱 한 사람만이라도 이 나라에 경선 승복 문화를 정착시켜야 해요”라며 경선 결과를 흔쾌히 승복한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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