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에 ‘자유’가 없다

  • 입력 2008년 1월 11일 03시 00분


3곳 청장들 “규제 족쇄 풀어달라” 인수위에 건의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에 대한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의 업무보고장. 배석자인 이환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규제 완화가 안 되면 투자유치 절대 성공 못합니다. 경제자유구역에 국내 균형발전 논리를 적용하면 외국인투자가들은 중국이나 싱가포르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청장은 업무보고가 끝날 때 다시 발언권을 얻어 규제 완화를 한 번 더 호소했다. 특위 안팎에서는 ‘오죽 했으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 외국인 투자 유치 지지부진

경제자유구역은 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2003년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한 이후로 국비만 8조 원 이상의 돈이 투입됐으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10일 본보와 인터뷰한 경제자유구역청장들은 그 원인을 “복잡한 규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부처가 정한 규제들이 자유구역에도 그대로 적용돼 기업을 유치하는 매 단계에 걸림돌이 되는데, 경제자유구역청에 그런 규제를 조정할 권한은 전혀 없다는 것이 청장들의 불만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전체 면적 104km² 중 64%가 그린벨트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김문희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은 “문화재보호구역이 19곳인데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어 손도 못 댄다”며 “외국 기업들이 땅을 달라고 요구하는데도 없어서 못 준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호소했다.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에서는 여수 화양지구 골프장 건설 허가가 2년 반을 끌었다. 해안 오염과 인근 소나무 군락지 훼손이 우려된다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때문이었다.

백옥인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장은 “소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해서 노송이 우거진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 보니 내 키만 한 나무들이었다. 정말 가당찮았다”며 탄식했다. 그는 “오염방지 대책을 완벽하게 세웠는데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이런저런 이유로 허가가 안 나는 것에 대해 외국인 설계사들이 이해를 못하더라”며 “관료인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들은 오죽할까”라고 푸념했다.

66만 m² 규모의 조선소를 유치했을 때에는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항만에 동시에 배 두 척이 들어올 경우를 가상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자료를 요구했다. 해당 조선사는 “번잡한 부산에서도 하지 않는 일을 항만시설이 남아도는 광양에서 요구한다”며 황당해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내 대기업 투자가 수도권정비계획법 탓에 막혀 있다. 외국 기업은 할 수 있는 투자를 국내 기업은 할 수 없는 역차별이다.

이환균 청장은 “외국 기업에는 현지 기업과의 정보 교류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삼성, LG가 중국으로 가는 마당에 외국 기업을 어떻게 유치하겠느냐”며 탄식했다.

○ “정부가 고아원에 버렸다”

경제자유구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규제가 더 복잡해지거나 지원이 줄어든 경우마저 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산업입지의 진입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은 사업비 전액을 국고로 지원하게 돼 있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 내의 기반시설은 절반만 국고로 지원하게 돼 있다.

경제자유구역 안에 있는 산업단지도 산업입지법에 따라 전액 국고 보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경제자유구역청의 주장. 하지만 주무 부서인 건설교통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 청장은 “건교부에 여러 차례 항의를 했지만 ‘너희는 재정경제부가 만든 청 아니냐’는 식으로 나오더라”며 “나라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자식을 낳은 뒤 고아원에 내다버렸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경제자유구역청들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공통적으로 경제자유구역법을 특별법으로 바꾸고, 경제자유구역위원회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을 대통령 직속으로 승격시켜 줄 것을 건의했다.

지금처럼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기획단이 재경부 산하에 있는 구조에서는 각 부처가 나눠 쥐고 있는 규제를 없애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이 청장은 “각 부처에 없앨 규제를 가져오라고 하면 ‘잔가지’만 가져오지 ‘뿌리’는 절대 가져오지 않는다”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과감하게 규제를 쳐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경제자유구역:

지리적 이점과 기술 인력 등 인프라를 갖춘 지역에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 경제활동의 혜택을 부여해 성장 거점으로 키우자는 구상. 정부는 2003년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만권 3곳을 지정했으며 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인 지난해 말에 경기-충남, 대구-경북, 전북 등 3곳을 추가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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