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가 10일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과의 신년모임에서 “공천을 잘못하면 좌시하지 않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측근이 대거 포진해 있는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총선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예정대로 ‘3월 초 공천’을 강행할 태세여서 양측 간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꾸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고, 나와야 할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안 나와야 할 이야기만 나온다”면서 이 당선인 측근들의 ‘밀실 공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어 그는 “(이 당선인 측은) 당헌 당규대로 한다고 말만 그럴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번 공천이 새 정부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전략적으로 공천을 최대한 늦춘다든지 물갈이를 한다든지 하는데 한나라당에 밀실정치와 사당화가 있거나 공천에 사심이 개입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이런 문제 제기를) 계파 이익을 위해서라거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면 우리 정치는 또 후퇴한다. 이것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누가 누구를 물갈이한다는 이야기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공천을 계속 늦춰 물리적으로 충분한 심사 여지를 주지 않고 공천한다면 결국 비공식적으로 밀실 공천이 이뤄지고 형식적으로 심사해 발표해 버린다는 것”이라며 “정당정치와 정치 발전의 초석은 투명한 공천이다. 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또 김무성 최고위원이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총선 물갈이론’을 언급한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다 옳은 지적”이라고 말해 이 사무총장의 사퇴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박 전 대표 측근 의원들도 “오늘 모인 32명은 박 전 대표 말에 전적으로 뜻을 같이하고 행동을 함께하겠다”고 결의했다. 의원 사이에서는 “공천 위협을 처음 느껴 봤다” “고생해서 여당 만들었더니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격한 발언도 쏟아졌다.
갈등의 불꽃은 당장 이날 구성된 총선기획단으로 옮겨 붙을 조짐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이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김학송 전략기획본부장,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 정종복 사무1부총장, 송광호 사무2부총장, 박순자 여성위원장, 서병수 여의도연구소장, 김정훈 원내부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총선기획단을 발족했다.
이들 중 ‘친박근혜 성향’은 김학송 송광호 서병수 등 3명이며 나머지 5명은 이 당선인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혜훈 의원은 이날 모임 직후 “총선기획단이 최소한의 업무만 마무리한 뒤 해산해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공식 요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쟁에 나선 박 전 대표 측은 ‘화력이 강한 무기’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현 정치 상황에서 탈당은 자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기자들에게 “농담이라도 탈당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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