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사람이 조직 팔아 영달 꾀하나”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대선 전날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이 국정원 내부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국정원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유출 당사자가 국정원 내부 인물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번 일이 조직에 개혁 태풍을 몰고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대화록이 유출된 직후 국정원은 10일부터 강도 높은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범인’을 색출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11일 공식적으로 “문제의 보고서 관련자들에 대한 자체 보안조사를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인수위 업무 보고 당시 국정원에서 두 개의 대화록을 가져갔으며, 보고를 마친 뒤 모두 회수해 왔기 때문에 인수위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내부적으로 결론지었다.
국정원은 보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문서를 복사해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 내부에서조차 국정원 최고위층에서 조직적으로 언론사에 흘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문서가 나갔다면 보안감사의 대상이 될 하위직이 유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했다면 윗선일 것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정원 일각에서는 “떠날 사람들이 조직을 팔아 영달을 꾀하는 대죄를 지었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등에 관여했던 ‘대북 라인’ 중심으로 승진 혜택을 줬다며 불만을 품은 직원이 많았던 상황에서 이번 사건까지 터져 조직 내부에 불만이 폭증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예정보다 20일가량 앞당겨진 지난해 12월 초 인사에서 김 원장이 남북회담 실무자로 썼던 40대 초반의 과장급 인사가 부국장으로 승진해 조직 내부에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거셌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장은 대선 직후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저서를 간부들에게 돌려 직원들로부터 “역시 김만복”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나가는 사람들이 사고치는 바람에 직원들만 죽어나게 생겼다”며 “안 그래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국정원이 개혁의 대상이 돼 왔는데 이번에도 문서 유출 건이 빌미가 돼 서너 대만 맞으면 될 것을 10배 이상 맞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이 대북 관련 업무에서 ‘10년간 좌파정권에 부역했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이번 일로 엉뚱한 데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완전히 폭탄 맞은 분위기다. 어떤 ×이 유출했는지 모르지만 이러다가 엉뚱한 하급들만 유탄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국정원 일각에서는 “보신을 위해 유출한 것으로 보이는 대화록이 새 권력에 도전하는 것처럼 비쳤다”며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정보의 흐름과 반향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