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병일]4강외교 첫 단추에 쏠린 눈

  • 입력 2008년 1월 14일 0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4강 특사’가 이번 주부터 파견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중국 특사로 베이징을 방문하고, 정몽준 의원은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간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일본 특사로,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러시아 특사로 각각 파견된다. 지난달 20일 대선 승리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실용주의적 외교를 하고 남북 협력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가 그 서막을 열고 있다.

실용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길

실용외교는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지난 10년간에 걸친 외교정책의 이념 편향을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외교정책 최우선 목표가 한반도의 평화 유지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좌파 정부’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 등으로 불린 대북포용정책을 추구해 왔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난 10년간의 대북포용정책은 실패했다. 지속된 원조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핵이 남쪽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어불성설은 그냥 웃고 넘긴다 치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성 관광 덕분에 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되지 않았느냐고 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다. 남북경협을 둘러싼 불법 뒷거래 의혹, 주적 개념의 혼란 등 남남갈등은 지난 10년간 증폭되어 왔다. 그간의 대북포용정책은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했다. 햇볕정책 초기부터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는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역사는 그 우려를 현실화시켜 줬다.

대북정책의 실패는 노무현 정부 외교정책의 근간인 ‘동북아 균형자론’의 허구성과 맥을 같이한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본질적 속성은 한국이 미국에서 멀어지면서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외교 행태를 의미했다. 노무현 정부와 심정적인 공감대를 가진 학자들이 한미동맹에서 이탈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옹호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은 중국의 국력을 미국과 대등하게 보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중국과 미국의 대립으로 한반도의 안정이 위협받을 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서서 균형을 잡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5년간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 요청에 응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미군기지 이전을 협의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고도 한미관계는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 갔다. 미국에 ‘할 말은 한다’던 정부는 정작 세계 최대의 중국 투자국이면서도 중국의 반인도적 탈북자의 처리 문제에는 정작 할 말을 잊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처절하게 무너졌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5년 전 노 대통령 취임식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등 우호적으로 시작된 분위기는 독도 문제, 교과서 왜곡 등으로 반일정서가 높아지면서 노무현 정부는 외교적인 해결보다는 외교적인 대립에 열중했다.

공동이익 찾는 게 외교의 본질

노무현 정부 외교의 이념 과잉 거품을 걷어내고 수사학적인 자아도취를 자제해야 한다. 과거의 그림자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의 신뢰 회복이 중국과의 관계 소원을 의미한다면 실용외교가 아니다. 국가 간 이익 추구를 위해 갈등하면서도 전쟁이 아닌 외교적인 해법이 가능한 것은 공동의 이익을 서로 인지할 때다. 실용외교는 이 점에서 외교라는 단어의 동의반복인 셈이다. 4강 특사들의 활동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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