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인수위와 국정원 취재를 통해 대화록 유출에 국정원 수뇌부가 개입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1일자 A1면에 ‘국정원장 평양대화록 국정원서 유출’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김 원장은 이후 칩거하며 고민한 뒤 15일 출근 직후 기자회견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오후 준비해 온 한 장짜리 사퇴문을 5분여간 낭독한 뒤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질문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자리를 떴다.
국정원 직원들은 “늦게라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표정이었으나, 김 원장이 검찰 수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친분 있던 14명에게 대화록 전달=국정원은 5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방북 배경과 경과’라는 보고서만 제시했다. 인수위 관계자들이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며 추가보고를 요청하자 김 원장이 ‘김양건 통전부장과의 환담 내용’이라는 문제의 대화록을 작성했다. 직원들은 이를 8일 인수위에 보고했다.
김 원장은 인수위 보고 후에도 여론의 의혹이 분분하자 평소 친분이 있는 국정원 퇴직 직원과 한 신문사 간부 등 14명에게 대화록이 담긴 보고서를 전달했다.
김 원장은 9일 간부 C 씨를 통해 한 신문사 간부에게 ‘보도하지 말 것’을 전제로 보고서를 넣은 봉투를 전달했다. 이 신문사는 10일자 1면과 6면에 보고서 사진을 포함한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국정원은 보도 후 13일까지 인수위 및 국정원 퇴직 간부들을 조사했다. 김 원장은 자신이 제공한 자료가 보도된 것을 확인하고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장의 해명과 사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대화록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김 원장이 대화록에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진짜 대화 내용은 당사자인 김 원장과 수행원들만이 알고 있는 상태다.
▽추가조사-사법처리 검찰 몫으로=국정원은 이날 “자체 조사는 끝났다”고 밝혀 추가조사 및 사법처리는 검찰의 몫이 됐다. 검찰은 직접 수사에 나설 수도 있고 인수위나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아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 검찰은 대화록 내용을 파악한 뒤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 원장의 사법처리 여부는 문건의 내용이 국가정보원법 등에 따른 비밀인지에 달려 있다. 국정원직원법 17조는 ‘국정원 직원이 재직 중이거나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지득(知得)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검찰 중견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국정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것부터가 비밀이고, 북한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지검의 중견간부는 “정식으로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면 비밀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면서 “해당 문건의 비밀성이 있는지, 내부적으로 비밀로 분류했는지, 일반인들이 알게 되면 안 되는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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