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새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야지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승리의 일등공신인 유우익(사진) 서울대 교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여를 고사하고 학교로 돌아갔던 그가 이 당선인을 도와 새 정부에서 일할 뜻을 내비쳤다. 물론 “정말 내키지 않지만 내가 꼭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유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국제전략연구원(GSI)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 교수는 이 당선인의 공약에 철학적 자양분을 제공했으며 당선인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측근 중 한 명이다.
―이 당선인에게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웃으며) 가당치 않은 얘기다. 후보의 생각을 정리하고 개념화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 당선인의 취임사 준비에 관여하고 있지 않나.
“이 당선인이 ‘취임사를 좀 맡아 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래서 ‘하던 일이니 해드려야죠’라고 했을 뿐이다.”
―새 정부에서 일해야 하지 않을까.
“노자(老子)에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말이 있다. 공을 세웠지만 그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난 내세울 공도 없지만 내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꼭 할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있나, 서포트(지원)를 해야지.”
―왜 국민이 이 당선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민이 불안하다. 이는 시대의 변화로 인한 불안, 열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안, 가치 변화에 따른 불안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불안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단지 ‘경제’로 느낄 뿐이다. 이 당선인은 국민이 몸으로 느끼는 경제를 건드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은 게 아닌가.
“꼭 그것만은 아니다. 이 당선인은 실적을 갖고 있다. 민주화 초기에는 감옥에 갔고, 산업화 시기에는 최전선에서 돈을 벌었다. 서울시장 때는 청계천을 만들었다. 이런 사람이 변화의 시대에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했고 섬기겠다고 했다.”
―이 당선인이 내건 ‘창조적 실용주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갖고 세상을 재단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좌우(이념)의 단일 잣대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잣대를 갖고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게 실용주의다. 이를 이명박 정부의 정치철학으로 가져오면서 창조적 실용주의로 발전시켰다. 창조적 실용주의는 역동적이다. 목표를 향해 가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고 다가오는 것에는 다시 도전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가 정치 다툼의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는데….
“선거 기간 대운하를 제대로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명박에 찬성하면 운하에 찬성하고, 이명박을 반대하면 운하도 반대하는 식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일단 대운하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찬성이든 반대든 해야 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조직개편안 주도 곽승준 인수위원
“당선인,내각중심 국정운영 확고”
“정부조직 개편으로 공무원 감축은 불가피하겠지만 공무원 신분, 또는 직업인으로서의 위치는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16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한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기획조정분과 곽승준(사진) 인수위원은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직 개편으로 인한 공직사회의 인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경제참모인 곽 위원은 기획재정부가 공룡 부처로 부상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경제정책 수립 및 조율 기능이 일원화된 만큼 기능 통합에 따른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감축 여부로 공직 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퇴직이나 이직 등으로 인한 자연 감소분을 감안하면 그렇게 많은 인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없어지는 분들은 앞으로 정부 각 부처에 신설되거나 강화될 대민 봉사 파트 및 규제 개혁 조직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당선인이 부처에 이어 실국 단위의 조정에도 착수하라고 했는데….
“기능 위주로 부처별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빈틈이 없도록 조율하는 게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각 부처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나 실국 조정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주로 파편화된 실국 조직을 되도록 큰 덩어리로 묶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본다.”
―기획재정부가 금융정책을 제외하면 이전의 재정경제원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정책을 떼어내 금융위원회로 넘긴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부처에서 가장 규제가 많은 부서를 꼽으라면 단연 금융 관련 부서다. 이제 금융위원회로 금융정책 수립 및 감독 기능이 이관돼 금융 행정 서비스를 일원화하고, 민간 인사들이 맡게 될 금융감독원과 역할을 분담해 ‘관치 금융’이 불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주요 보직 인선 기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료 출신 중에서도 금융산업에 대한 민간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 발탁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신설 목표 중 하나는 이제 한국 금융도 메릴린치 등 세계적 투자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인 곽 위원은 고려대 정책대학원에 ‘부동산금융 최고위과정’의 개설을 주도하는 등 오래전부터 금융산업 선진화를 위한 토양 구축에 관심을 보였고, 인수위의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 등을 주도했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경제수석이 경제 컨트롤타워를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당선인의 의지는 확고하다. 당선인의 경제 철학을 각 부처에 전파하고 이를 자연스레 시장까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어떻게 되나.
“워낙 복잡한 문제라서 당장 민영화를 추진할 수는 없다. 우선 각 공기업의 성격을 분석해 민영화 대상을 추려야 한다. 국가 기간산업이거나 시장에 맡길 경우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여전히 지금의 공기업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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