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장관들의 대북 저자세 반성”
통일부는 22일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 평가에 착수하면서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첫째, 지난 10년 동안 정책의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가? 둘째, 북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셋째, 그 변화는 의도한 것인가?
국가기관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뒤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통상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대북정책의 성과를 한 번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것 자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진행되는 통일부의 대북정책 성과 평가는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반성에서 나왔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대화 물꼬 튼 것은 일단 긍정적=대북정책의 일관된 목표는 평화 통일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화해와 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대북 포용정책은 이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리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포용정책의 하위 전략목표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최고지도자를 설득해 위로부터의 변화 유도 △접촉면 확대를 통해 아래로부터 북한 주민 변화 유도 △경제협력을 통한 대남 경제적 의존도 확대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을 통한 긴장 완화 등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대북정책 브레인인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총론적으로 보면 지난 10년 동안 남북 화해 협력의 토대를 닦고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서 소장은 “남북관계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고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 대북정책은 포용정책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에는 남북 간에 상호주의가 불가능했지만 포용정책이 성공해 북한의 대남 의존도가 높아진 결과 새 정부는 북한에 지원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일방적이고 균형을 잃은 추진=그러나 통일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일부 정책은 국민 전체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고 균형을 잃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특히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과 후속회담은 속도와 분량에서 정상적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 내부에서는 이 과정에 역대 실세 장관들의 잘못된 역할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정치적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남북경협공사 등 현실과 거리가 있는 사업을 밀어붙이다 정부 내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종석 전 장관은 ‘자주파’임을 강조한 나머지 ‘동맹파’와 갈등을 빚었고 이재정 현 장관은 종전선언 및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으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및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마찰을 빚어 통일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일방적으로 대북정책을 주도한 실세 장관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잃고 저자세로 끌려 다녔다는 것은 공통된 비판이다. 감사원이 감사 중인 남북협력기금의 방만한 운용과 통일안보교육의 미비 등도 성과 평가의 ‘반성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질적 변화도 무시할 수 없어=하지만 통일부는 “북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많이 생겼다”면서 이를 질적인 지표로 나타내 보일 계획이다. 특히 북한이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군사 안보적인 양보를 한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조성 사업의 파급 효과를 부각시킬 예정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시 전체 인구 13만 명 가운데 17.3%인 2만2500명이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다”며 “이들이 남한의 공장에서 일하며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남한의 긍정적인 면들이 입소문을 타고 북한 주민들에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남측을 상대하는 북한 당국자들의 의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간부는 “북한 당국자들은 이제 남측 파트너를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함께 술을 마시며 당국의 지침이 아닌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고 껄끄러운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10년의 변화는 분단국이 경제 사회적 교류 협력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정치적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며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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