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총리 역할 축소된다지만 누가 맡느냐에 따라 달라져”

  • 입력 2008년 1월 26일 02시 49분


“우선 한 잔 하고 시작합시다.”

25일 오전 1시,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총리에 사실상 내정된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 특사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수시간 전부터 기다린 기자에게 일본산 몰트위스키부터 내놓았다. 강추위에 언 몸을 녹이라고 꺼낸 것이지만, 전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유구무언”이라고 말한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면 자신도 약간의 술이 필요한 듯했다.

한 특사는 이날 총리 내정 여부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전날 오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총리직에 대한 의견을 나누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여전히 “유구무언”이라고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론이 그렇게 (총리에 내정됐다고) 쓰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며 총리 지명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한 특사는 “(새 정부에서) 총리의 권한이 많이 축소된다고는 하지만 조직보다는 사람이, 누가 (총리직을) 맡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 정부에서 중책을 맡게 된다면 기후변화 특사와 병행이 가능한가.

“기후변화 특사는 명예직이고 보수도 1년에 (상징적으로) 1달러밖에 안 받는다. 만약 국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대신 맡길 수도 있다. 실제 다른 나라의 기후변화 특사들도 장관직을 맡자 대리인을 보냈다.”

―이 당선인은 총리의 역할로 ‘자원외교’를 강조했다.

“한국은 원자재가 없기 때문에 자원외교가 중요하다. 요즘 중국 인도 등이 급격히 성장해 세계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석유 가격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앞으로는 자원외교가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중국은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자원외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너무 근시안적으로 당장 앞만 보는 외교를 해 왔다.”

―자원외교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다니면 총리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겠나.

“새 정부가 총리의 역할을 많이 축소시킨다고 하지만 조직보다는 사람이, ‘퍼스널리티’(인성 또는 자질)가 중요하다. 누가 맡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도 이해찬 총리 때와 한덕수 총리 때가 달랐고, 한명숙 총리 때도 다르지 않았나.”

―이 당선인이 강조하는 ‘실용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국제적으로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그런 가운데 경제 성장을 하는 게 중요하고 그걸 잘 해내야 한다. 당선인도 그런 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의지가 강한 것 같다. 현 정부는 이념 중심으로 얽매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당선인의 철학은 ‘창조적 실용주의’다. 실용주의도 좋은데 ‘창조적’이라는 말까지 붙으니 얼마나 좋으냐?”

밤늦게 시작한 인터뷰는 오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그는 “앞으로 자주 봅시다”라고 말했다.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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