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주의로 진보정당 몰락” 민노당 주류 퇴진 요구

  • 입력 2008년 1월 31일 02시 58분


창당 8주년 맞은 민주노동당, 요즘 무슨 일이…

《30일 창당 8주년을 맞은 민주노동당이 ‘분당’ 위기를 맞고 있다. 민노당은 2000년 1월 30일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창당했다. ‘원외정당’이었던 민노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9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원내 제3정당으로 발돋움했다. 또 2002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는 등 명실상부한 제도권 공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참패 이후 잠복해 있던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민노당은 사실상 ‘내전(內戰)’ 상태다. 평등파는 그동안 당내 다수파를 차지해 온 자주파를 겨냥해 ‘종북주의(從北主義) 청산’을 이유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고 일부 평등파는 아예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주장하고 있다. 8년의 정치실험 속에서 제도권 진보정당을 자임해 온 민노당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처참한 대선 결과… 당내 갈등 폭발

민노당의 대선 성적표는 참혹했다. 원내 제3당으로 기호 3번을 받았던 권영길 후보는 3%(71만여 표)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2002년 대선에서 권 후보 자신이 얻었던 3.9%(96만 표)에도 24만여 표나 못 미쳤다.

특히 2002년 원외 정당으로 치른 대선과 달리 제도권 정당으로서 4년에 걸친 원내 정치 활동 후에 받은 성적표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컸다.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277만 표(정당 득표의 13%)를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대선 결과는 ‘패배가 아닌 몰락’이라는 평가가 과장만은 아니다.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미래에 투표하라’는 민노당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다.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추진하는 당내 인사들은 “민노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며 민노당 몰락의 원인을 자주파의 ‘종북주의’에서 찾는다.

최근 민노당을 탈당한 진보지식인 홍세화 씨는 28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노당의 당권파인 자주파 또는 주체파는 한국적 분단 현실의 산물이긴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노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새해 들어 2차례 집단 탈당 충격

11일 민노당 부산 해운대 지역위원회 소속 당원 51명이 집단 탈당했다. 22일에도 전남도당 여수 지역 당원 45명, 광주시당 당원 30명이 탈당하는 등 집단 탈당이 이어졌다. 충성심 높은 민노당원들의 집단 탈당은 8년 민노당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당 안팎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민노당 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은 2000년 창당 때부터 내재돼 있었다.

민노당은 창당 때부터 친북 성향이 상대적으로 짙은 자주파가 줄곧 당권을 장악해 왔다. 상대적으로 소수파인 평등파는 이에 맞서 인권 등 북한의 여러 문제점을 당 지도부가 외면하는 것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평등파는 한때 서민정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민노당이 대북 정책에 발목이 잡히면서 ‘친북당’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을 두고 벌어진 갈등이다. 평등파는 “북핵 실험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반면 자주파는 미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당시 이용대 정책위원장의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은 당내 논란을 증폭시켰다. ‘미군 철수 시 북핵 폐기’라는 민노당의 대선 공약도 마찬가지였다.

‘친북(親北)주의’를 넘어서 ‘종북주의’란 말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 자주파 “친북 딱지 붙이면 타협 불가능”

좌초 위기에 몰린 민노당은 평등파 출신인 심상정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선출했다.

당내 강경 평등파의 ‘분당론’을 의식한 심 대표는 강력한 ‘종북주의’ 청산을 추진하고 있다. 비대위는 26일 워크숍을 열고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 인사들에 대한 제명을 결정하고 ‘편향적 친북 행위는 당헌 당규와 강령을 위반한 행위’로 규정했다. 적당한 타협책으로는 ‘민노당 괴멸’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민노당의 운명은 다음 달 3일 임시 당 대회에서 비대위가 결정한 ‘종북주의 청산’ 등 당 혁신안이 추인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자주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비대위 안의 당 대회 통과 여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심 대표는 30일 비대위 회의를 통해 “당 대회는 중앙위로부터 혁신 과제를 부여받은 비대위가 마련한 혁신안에 대한 승인 여부를 묻는 것이며 그 결과는 비대위에 대한 신임 여부와 동일하다”며 혁신안과 비대위 재신임을 연계하는 ‘배수진’을 쳤다.

신당 창당파 일부는 비대위의 혁신안이 당 대회에서 부결된 뒤 심 대표와 노회찬 의원 등 대표적 평등파 인사들이 새로운 진보신당으로 합류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노 의원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두 개의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지금까지의 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지금 이 자리가 아닐 수 있다”며 탈당을 시사하기도 했다.

자주파의 대표 격인 김창현 울산연합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대위를 인정하며 지도부를 총사퇴했고 저는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는데 자주 평화통일 신념을 종북이니 친북이니 딱지를 붙이면 타협이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다수파인 자주파가 비대위의 혁신안을 부결시킨다면 결과적으로 ‘민노당=친북당’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될 수 있다. 분당의 책임을 자주파가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점도 자주파로서는 부담이다.

대다수 신당파 인사들은 “당대회까지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 노력을 지켜보자”는 방침이어서 다음 달 3일 당 대회가 민노당 진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한 지붕 두 가족’ 민노당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대표 심상정)가 주도하고 있는 ‘종북주의 청산’을 위한 혁신안을 두고 당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종북주의 청산으로 불거진 당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은 결국 양측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선 북한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 비롯된다.

▽NL과 PD=민노당 내 자주파는 민족해방(NL·National Liberation) 계열, 평등파는 민중민주(PD·People Democracy) 계열로 분류된다. 양측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양대 진영으로 자리잡아 왔다.

NL 계열은 한국 사회의 모순이 민족 분단에서 비롯됐고 한국은 여전히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고 반미투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불어 ‘민족’을 강조하면서 자주적 통일을 내세운다. 상대적으로 친북 성향이 강해 흔히 ‘주체사상파’로 불리던 이들 NL 계열은 2002년 대선을 전후해 민노당 내 다수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스스로를 ‘자주파’로 부르기 시작했다.

PD 계열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 모순은 독점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분단도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확대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 변혁의 중심세력으로 노동계급을 내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민노당은 2000년 1월 PD 진영이 주도해 창당했지만 이후 세력 확대 과정에서 NL 진영의 전국연합이 합류해 지금처럼 ‘한 지붕 두 가족’을 이루고 있다.

▽종북주의와 일심회 사건=종북주의는 한국 사회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관점에서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북한 정권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한국 사회에 펼치려고 하는 사상을 말한다.

대선 참패 이후 당권을 쥐고 있던 자주파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종북주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평등파는 자주파의 ‘코리아 연방공화국’ ‘북핵 자위론’ 등 편향적 친북노선이 민심이반으로 이어져 대선에서 참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민노당은 북핵에 대해서는 ‘자위론’을 펴고,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에 적극 동조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일각에서 ‘조선노동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반면 평등파는 통일문제보다는 노동 인권 문제 등을 중시하면서 북한 핵개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자주파의 반대로 비판 성명서 하나 내지 못하자 평등파는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민노당 내 종북주의 청산 움직임의 근거가 된 것이 ‘일심회’ 사건이다. 일심회 사건은 고정간첩 장민호 씨가 ‘일심회’를 만들고 민노당의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을 포섭해 북한에 국가기밀을 넘긴 사건.

이 때문에 민노당은 친북, 종북 이미지가 덧씌워진 상태이며 비대위가 이들 2명에 대한 제명안을 낸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