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실명제 사적 친분관계 개입됐는지 파악
검증 전담팀 낙점 앞두고 신상정보 정밀 조사
《대통령수석비서관과 내각 인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유의 ‘다단계 인선 시스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안, 영어 공교육 실천 방안 등 핵심 정책 과제에 비해 인선작업과 발표가 상대적으로 더딘 것은 이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당선 후 복심(腹心)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핵심 측근 3, 4명이 이끄는 각각의 ‘인선팀’들에 수석비서관 및 각료 후보군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각 팀은 중앙인사위원회가 보유한 자료를 토대로 약식 검증을 거쳐 보직별로 3∼4배수의 후보를 추렸고 인선 결과는 정 의원에게 넘겨졌다.
정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각 팀이 어느 인사를 추천했는지 명기해 인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른바 ‘추천 실명제’인데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 장관에는 정 의원 팀에서 A, B, C 씨를 천거했고 또 다른 팀에서는 D, E, F 씨를 밀었다고 적는 것.
이는 향후 정밀 검증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팀에 책임 소재를 묻고 추천 과정에서 사적(私的) 관계가 개입됐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이 당선인 측의 한 관계자는 “2개 이상 팀에서 추천한 인사는 그만큼 실력도 있고 믿을 수 있으니 최종 인선에 도움도 된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이렇게 취합된 인선자료를 지난달 10∼12일 당선인 측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 의원이 갑자기 한나라당 당사에 나타나 인선 배경을 설명한 1월 11일 전후 이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 당선인은 대통령실장으로 내정된 유우익 서울대 교수, 임태희 비서실장 등 극소수 측근들과 이 자료를 검토하며 1일 현재까지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 의원은 고정 멤버는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정 후보를 배제하거나 점찍는 방식보다는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난상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후보가 마음에 드는데 ‘배경’이 의심스럽다면 이 당선인은 검증을 전담하는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에게 추가 조사를 지시한다. 박 팀장이 이끄는 ‘검증 요원’들은 31일에도 특정 인사 관련 자료를 떼러 서울의 한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했다고 한다. 한편 이 당선인은 이 과정에서 △능력 △조직 내 화합 △품성과 개성 △실물 경험과 이론의 겸비 등 네 가지 덕목을 순서대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웬만한 것은 다 갖춘’ 인물을 찾는다는 것인데 인선작업이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라는 해석도 많다.
한 측근은 “당선인은 검증 과정에서 우선 일을 잘하는지를 따진다.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조직에서 얼마만큼의 실적을 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며 “그런 사람 중 조직 내 화합을 잘하는지 등을 단계적으로 따져 본다”고 전했다.
이 당선인이 자신과 한 번도 같이 일 한 적 없는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국무총리 후보로 발탁한 것도 이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무 경험이 없는 이론가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도 한 특징.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총리 후보 인선 과정에서 측근들이 명망 높은 J, P 씨 등을 추천했는데 이 당선인은 “실무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李당선인 “주말은 청와대 밖에서 보내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31일 “일주일 내내 청와대에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말에는 가급적 외부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당선인은 이날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청와대에서) 금요일 오후에 나와서 일요일 밤늦게 들어가 평상 생활의 반 정도를 유지하고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이 당선인이 평소에도 ‘현장’과 ‘대면 접촉’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민심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는 “주말마다 청와대 밖에서 기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과 가까이 호흡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