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면 어떻고 현대면 어떤가요. 또 보수와 진보를 굳이 구분해야 합니까. 비빔밥을 만들 듯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찾아 잘 요리해내는 게 새 정부의 철학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이를 구현하겠습니다.”
박범훈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달 25일 국회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 준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이쪽저쪽으로 찢겨 있던 가치와 정신을 한데 모아 미래를 향한 동력으로 삼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취임식에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박 위원장이 식전 행사용으로 직접 작곡한 관현악곡 ‘시화연풍(時和年豊)’에도 가야금 등 전통악기는 물론 서양악기가 참여한다.
“취임식에는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없습니다. 비보이가 브레이크댄스를 추는가 하면 국악이 흘러나오고 150명이 동시에 북을 울리기도 합니다.”
박 위원장은 취임식 연단을 T자형으로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선서를 하고 나서 참석자들 앞으로 걸어 나와 취임사를 하도록 설계했다.
“단상도 취임선서 때는 바닥에 숨어 있다가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러 내려오면 밑에서 솟아오릅니다. 단상이 덩그렇게 놓여 있으면 대통령을 가리잖아요.”
취임식 엠블럼인 ‘태평고(太平鼓)’도 엄숙한 분위기의 태극기나 무궁화 대신 태평소와 북을 소재로 했다. 이 대목에선 그도 ‘너무 나갔다’ 싶었는지 이 당선인에게 무궁화가 그려진 후보작 3점을 제시했고 태평고는 뒤에 빼뒀단다. 이심전심인지 이 당선인이 태평고를 낙점해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됐다. 태평고라는 이름은 당초 실무자들이 태평소를 잘못 기입한 것이었지만 박 위원장이 즉석에서 태평성대를 알리는 ‘북’이라는 의미로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애국가도 유명 성악가의 독창이 아닌 4만5000여 명의 참석자가 함께 부르는 식으로 꾸밀 예정이다.
“형식상 어린이 2명이 대표로 부르긴 하지만 사회자가 참석자들의 합창을 유도할 겁니다. 애국가는 가수들만 불러야 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처럼 이번에도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전야제가 열린다. 하지만 이 당선인이 “너무 소란스럽게 하지 마라.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다.
취임식이 끝난 뒤에는 이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잠시 서울 청계광장에 들러 ‘열심히 일하라’는 뜻에서 국민들로부터 점퍼와 운동화를 받는 행사도 검토되는 등 취임 행사 전반에 박 위원장의 ‘창조적 실용주의’가 녹아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