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기념식수에 대비해 양 정상의 이름이 새겨진 대형 표지석을 준비해 갔다가 다시 가져온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14일 청와대에 따르면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행사의 하나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평양 중앙식물원에서 공동으로 소나무를 기념 식수하는 일정을 잡아놓고 그때 사용하기 위해 250kg 규모의 대형 표지석을 갖고 갔다. 여기엔 ‘남북 정상회담 기념식수’란 글귀와 양 정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표지석 설치에 대한 북측의 태도는 분명하지 않았다.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관행인 데다 ‘김 위원장이 식수행사에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설치는 보장하지 못 한다’고 했다는 것.
행사 당일 김 위원장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오면서 정부는 이 대형 표지석을 사용하지 못한 채 되가져왔다.
이후 정부는 북측과 추가 접촉을 갖고 표지석 설치 문제를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표지석의 글귀와 명의가 바뀌었다. ‘하나된 민족의 염원을 담아, 2007. 10.2∼4. 평양 방문 기념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으로 고쳐진 것. 양 정상이 같이 심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정상회담 기념식수’가 아닌 ‘평양 방문 기념식수’가 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표지석 크기도 70kg짜리로 축소됐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통령선거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새로 제작한 표지석을 갖고 방북해 기념식수된 소나무 밑에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의 이름이 담긴 표지석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노 대통령 이름이 들어간 표지석 설치에 난색을 표했다거나, 표지석 규모를 줄이라는 북측의 요구 때문에 다시 제작하게 됐다는 등의 얘기가 나온다.
또 김 전 원장이 굳이 대선 전날 방북한 사유에 대해 ‘표지석 설치’를 꼽아 ‘표지석 하나 설치하러 갔겠느냐’는 등의 의문이 제기됐을 때도 청와대는 표지석 설치 과정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천호선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처음에 만든 표지석 크기도 남북이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고, 양 정상이 공동 식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표지석 크기를 축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제작한 대형 표지석은 현재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에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